'하나님을 만난 행복'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18.01.06 왜 파리인가
  2. 2017.10.02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3. 2017.01.04 꽃보다 가족
  4. 2016.05.03 진리가 무엇이냐
  5. 2015.10.06 열정
  6. 2015.06.02 적과의 동침 1
  7. 2014.05.13 정의와 탐욕2
  8. 2013.11.25 사랑하면 보인다.
  9. 2013.09.01 정의와 탐욕
  10. 2013.07.02 어른이면 다 어른인가

왜 파리인가

비전 2018. 1. 6. 19:18 |

 여행은 가슴 떨릴 때하고 다리 떨릴 때하지 말라는 미국속담을 이제 두 번째 실천한다.

한 번은 2년 전 연말, 스페인여행 때이고 이번은 지난 연말 파리여행 때이다. 두 번 다 자유여행으로 딸과 함께였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니 마음의 여유도 있고 시간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어서 좋고, 현지인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그러나 자유여행에는 가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행전문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영어에 어느 정도 능숙하고 한두 번의 외국여행 경험이 있으며 컴퓨터검색에 능한 센스 있는 젊은이와 동행하면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항공권 예매부터 현지숙소 예매를 비롯하여 여행에 필요한 제반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함께하는 딸이 이 모든 것을 담당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아내와 함께 단지 여행을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지난 연말 12월 21일 새벽 일찍, 눈이 내려 노면도 살짝 얼어붙은 아파트길가에서 두 대의 택시를 놓치고 가까스로 세 번째 택시를 집어타고 공항버스정류소로 향하는 우리부부는 이번 여행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즐겁게 여행을 시작했다. 여느 해보다 추운 혹한에 장거리여행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딸애의 주선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빠, 엄마와 함께하고파하는 딸의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가!  



 인천공항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아침 7시밖에 안되었지만 수많은 여행객으로 공항은 몸살을 앓을 정도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사람들은 둘 중 한 사람 꼴로 외국을 더녀왔다는 통계가 나왔으니까 이천오백만이 외국여행을 다녀왔다는 말이다. OECD국가 중 여행증가율이 우리나라가 으뜸이다. 중국은 인구대비 10%인 1억 2천만, 일본은 인구대비 10%인 1천 2백만이 작년에 외국여행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외국을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꿈을 잃어버린 것인지 모르지만 자만이나 절망은 둘 다 망하는 지름길임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외국으로 많이 나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우리가 남들보다 월등이 잘 살아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더 어렵다. 그러기에 꿈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더 많이 살피고 더 많이 힘써야 한다. 어려울수록 더욱 도전해야 한다. 주저앉으면 죽는다. 인천공항을 오가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본다.



 비행기는 한 시간 반을 연착해서 12시 3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물론 외국계 항공기인 폴란드항공이다. 우리는 바르샤바 공항에서 두 시간 정도 머물고 다시 폴란드 항공의 다른 비행기를 갈아타고 피리로 들어가야 한다. 인천에서 바르샤바까지는 열 시간을 날아가야 한다. 기내에서의 열 시간이 가장 고역이다. 나는 아예 잠으로 이 시간을 짖뭉게버릴 심산이다. 집에서 준비해 온 안대로 잠을 청하자 다행히 단잠이 나를 평안으로 인도한다. 기내에서는 두 번의 서비스가 있다. 식사와 간식으로 밥과 빵, 음료를 제공한다. 기내식도 우리의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이 여행대국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외국계 항공이 국적항공을 포함해 백 개국에 이른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자고 먹고 하다가 바르샤바공항에 도착했다. 세계도처에서 자행되는 테러 때문인지 공항 검문검색은 몹시 까다로웠다. 검색대원은 공항수비대 소속의 현역군인들이다. 무표정한 모습에 겁이 났다. 여기서부터 유럽이니까 유럽의 관문인 셈이다. 그러니까 더욱 그렇다. 검문이 철저할 수밖에 없다. 한번 보이콧당하면 그만이다. 한국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자연히 긴장이 된다. 다행이 우리 셋은 잘 통과되었다.


 다시 파리 비행이다. 바르샤바에서 파리까지는 두 시간 남짓이다. 잠시 눈을 붙인 듯한데 파리의 드골공항이다. 새벽녘의 공항은 한산하다. 무사히 게이트를 통과하여 택시정유장으로 와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택시비는 유로화로 50불이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부지런히 달려 와 숙소에 이르렀다. 숙소는 파리 2번구에 있었다. 딸애가 서울에서 미리 예약한 현지인의 아파트다. 오층 건물이 ㅁ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4층에 우리 숙소가 있었다. 엘리베이트는 삼인용이라 아주 미니였다. 그러나 건물이 백년은 족히 된 건물이라 놀라울 수밖에 없다. 숙소는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구조와는 사뭇 다른 세로형 구조다. 거실, 주방, 화장실, 안방이 일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그네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튼 여행객을 배려해서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다. 우리는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을 내려놓는다. 햇반 30개, 누룽지, 김을 비롯하여 캔 반찬 등을 완벽히 준비했기에 아침, 저녁은 너끈히 우리식으로 먹을 수 있다. 유럽에서도 슈퍼는 아주 싸다. 과일이 더욱 그렇다. 스페인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파리에서의 외식은 돈이 많이 든다. 물가가 서울보다 조금 비싸다. 특히 레스토랑요금이 비싼 편이다.



 파리에서의 아침을 햇반으로 맛있게 해결하고 본격적으로 파리투어를 시작한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관광지다. 역사와 문화예술, 쇼핑으로 전 세계인이 연중 몰려든다. 가장 한가한 계절이 겨울이라니 좀 조용히 돌아볼 것 같기도 하다.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 있어 여간한 곳은 도보로 20분 거리다. 루브르박물관, 오세르 미술관, 콩코드 광장, 세느강, 개선문이 오늘의 코스다. 루브르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걸으며 중세기의 건물들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비가 간헐적으로 찔끔거리지만 대부분의 파리장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기온은 서울보다 따뜻해서 영상을 유지한다. 오가는 사람들도 정말 다양하다. 백인, 중동인, 아시아인, 흑인, 정말 인종 전시장 같다. 그 중에 흑인이 많다. 프랑스가 오랜 동안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특히 북아프리카계가 많다고 한다. 아시아계도 적지 않으니 이는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가 한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딸애의 말로는 파리에서는 인종차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단다.



 루브르, 말이 필요 없다. 와서 봐야 한다. 그 규모나 웅장함이 가히 세계의 압권이다. 12세기 후반에 필립 2세에 의하여 착공되었지만 본래는 궁이었다. 그 후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궁을 지어 옮긴 후 왕실의 유물을 전시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증축 중이다. 박물관 옆으로는 세느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 맞은편은 오세르 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우리일행은 6일간의 파리 무지움 패스권을 사서 삼각 피라미드를 통과한다. 여기서도 검문검색은 철저하다. 궁으로 착공되었던 기초석을 비롯하여 궁의 석벽이 지하 3층에 아직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소중한 것들을 남겨 놓으려하는 선조들의 정신은 후세를 풍족하게 한다. 루브르에서의 모나리자는 단연 관광객들에게는 최대의 볼거리다. 모나리자 앞에서 인증샷을 하고 무진장한 유물 속으로 역사의 여행을 시작한다.



 루브르에서 나와 세느강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한 정치 망명가를 생각한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파리의 속살을 실감 있게 전해 준 정치평론가, 우리의 아픈 현대사와 함께한 초로의 신사를 떠올리며 콩코드 광장을 걸어 올라간다. 루브르와 개선문 간의 거리는 걸어서 40분 정도 되는 것 같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현장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뮤지컬로 상영된 적이 있는 ‘레미제라블’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다. 드디어 개선문에 도착했다. 콩코드 광장에서 곧장 걸어 올라오면 지하로 개선문에 이르게 되어 있다. 여기서도 역시 무지움 패스로 검문소를 통과하여 개선문 내부 통로 계단을 거쳐 5층 높이의 개선문 전망대에 오르니 에펠탑이 잿빛 하늘 아래 나타난다. 파리가 완전한 계획도시임을 여기 전망대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개선문에서 열두 거리가 펼쳐진다. 열두 거리의 노폭도 거의 일정하고 일직으로 뻗은 모양이 개선문이 원의 중심점이다. 건물의 높이도 철저히 제한되어 있어 높아야 육칠층 정도다. 우리나라처럼 우후죽순 솟아올라 스카이라인을 다 가려버린 도시와는 사뭇 달랐다.



 파리에서의 둘째날은 오르세 미술관, 셋째날은 몽마르트 언덕과 에펠탑, 넷째날은 노트르담 대성전, 다섯째날은 피카소 미술관과 로댕 미술관, 여섯째날은 베르사이유궁전, 일곱째날과 여덟 번째날은 시내투어, 마지막날은 고흐마을 방문, 이렇게 파리여행 계획을 잡았다.



 오늘은 베르사이유궁을 보러가는 날이다. 베르사이유는 파리 교외에 위치해 파리전철을 이용해야 한다. 아침 9시경,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파리는 지하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목적지를 찾아가기도 쉽다. 스마트폰에 구글지도를 앱으로 다운받아 놓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여행객에게 구글지도와 번역기는 필수다. 역에서 교외로 나가는 전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베르사이유로 가는 관광객이 많다. 전철은 아주 깨끗하며 시트도 아주 편안하다.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단다. 차창밖으로 내다보니 교외로 나갈수록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고층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고 더러는 지금 공사 진행 중이다. 타워 크레인이 분주하게 자재를 나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한 시간 후 전철역에서 내려 베르사이유궁 앞 광장에 다다르니 선착객들이 벌써 줄을 서 있다. 비가 내리고 상당히 추운 날이었지만 상당수는 우산도 쓰지 않고 있다. 말로만 듣던 곳, 실제 와 보니 그 규모가 실로 대단하다. 궁의 철제 정문은 황금색 왕관으로 장식되어 있고 H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궁들은 모두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다. 한 시간 가량 줄을 서 기다린 후에 무지움 패스로 들어간 궁 안의 실상은 문짜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화려한 궁은 결코 없으리라는 확신이 왔다. 루이 14세 때 착공하여 루이 16세 때까지 지었으니 공사 기간도 길었지만 궁에 소요된 경비로 나라의 재산이 거덜났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볼 수 있었다. 루이 16세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하여 지은 궁을 오고 오는 세대에 수많은 관람객은 와서 무엇을 보는가? 그 화려함인가? 아니면 화려함의 미인가? 그것도 아니면 화려함의 뒤에 감추인 인간의 사악함인가? 궁을 돌아본 우리일행은 궁 앞으로 펼쳐진 정원으로 나왔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조성된 인공정원을 보면서 여기에 동원된 노역꾼이 얼마일까 생각해 본다. 정원 사이로 난 넓은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내려오니 숲 속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별궁이 나타난다. 이 별궁은 본궁과는 달리 아주 검소하다. 소위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지라 불리운다. 수많은 농노들을 거느리며 농사도 지었다니 앙투아네트는 누릴 것은 다 누린 사람이다. 루이 16세나 안투아네트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이것이 역사의 진실 아니겠는가 싶다. 혁명의 시민들의 분노가 얼마만 했을까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가 입헌 군주국을 고집하지 않고 온전한 공화정의 길로 나아갔던 것을 볼 때 후세인들에게 시사해 준 교훈이 너무나 크지 않았나 생각되어진다.



 파리는 피카소와 로댕과 고흐를 사랑하며 베르사이유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나는 아내와 함께 나의 사랑하는 딸의 안내를 받으며 고흐마을까지 돌아보고 왔다. 한 사람이 무엇을 남기고 갔으며 어떻게 살다 가야 할지를 나에게 가르쳐 준 파리였다. 왜 파리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파리야, 고맙다. 언제 다시 오려나?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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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칙하고 무거웠던 온갖 잡내의 무게를 홀가분히 털어내고 기어이 가을은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왔다. 한낮의 가을 공원풍경은 참으로 눈부시다. 우거진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가을 햇살은 마법사의 지팡이로 한바탕 자연의 진수성찬을 차려 놓는다. 빛의 깊이와 각도에 따라 나뭇잎의 색상은 모두 조금씩 달라진다. 모양이 다르고 색상이 다르니 잎만으로도 훌륭한 앙상블을 이룬다. 가을바람이라도 한번 불라 치면 숲속은 여지없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베토벤의 <전원>을 여기에 견주랴?

 

 중국 발 미세먼지와 사드의 보복으로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지루하고 답답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름의 무더위와 칙칙함을 견딤이 없다면 가을의 풍성함도 없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도 그러하고 한 나라의 장래도 그러하다. 짓누르는 무거움 속에서 내일을 생각해야 하고 내일의 소망 속에서 알참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가 없고 치열한 노력과 기다림이 없으면 어찌 탐스러운 열매가 있으랴?

 

 가을은 생각의 계절인가?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진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걸작인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면 생각이 없는 인간은 투명인간이 아닌가?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생각을 발전시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기를 갉아먹는 해악(害惡)으로 변질되어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요사이 생각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생각이 걱정이나 근심으로 나를 몰아넣지는 못한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나는 삶의 거의 태반을 문제를 보고 그 문제에 매몰되어 살아왔지만 이제는 문제를 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보지 않으려 한다. 문제 너머에 계시는 문제를 주시는 그분의 의도를 보려한다. 내 힘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전능자 하나님에게 그 문제를 맡겨 버린다. 그러기에 생각하며 살아가는 특권을 누리면서 그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맛보며 산다.

 

 이 가을에 소중한 나의 깨달음 하나, 함께 나누고 싶다. 얼마 전에 나의 소중한 벗을 한번 만났다. 못 만난 지 오륙년 되었으니 참 반가웠다. 그러나 함께 오래 머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인생이 그런 게 아닐까? 그리워하면서도 아니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니 인생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벗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요, “요사이 당신도 잘 아는 그 사람 있잖아, 거의 매일 나를 불러내어서 귀찮아 죽겠어, 만나면 자기 자랑인데, 집이 칠십 몇 평이라느니, 자기 아들은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의 치과를 나와서 수하에 네 명의 부원장을 거느리고 있다느니… 하면서 자랑하는데 듣기 싫어 죽을 지경이야, 그런데 그 친구, 벗들을 위해 밥 한 끼는 절대 내지 않아” 이 말을 다 듣고 난 나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벗님, 버리십시오” 버림이 정답이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쇠퇴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그게 바로 자랑이다.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거나 어쩔 수 없이 놓아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건강도 그러하고 돈도 명예도 지위도 다 놓아야 한다. 그러나 자랑만은 절대 놓지 않는다. 자랑에는 끝이 없다, 외모, 힘, 건강, 자식, 배우자, 돈, 명예, 지식, 지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랑할 것이 없으면 ‘내 이웃에 그 부자, 그 사람 살았잖아’ 이 식이다. 그래서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한다. 나의 중학교 2학년 때 에피소드이다. 옆의 친구가 쉬는 시간만 되면 무엇을 꾹꾹 씹는다. 육이오 한국 전란이 끝나고 오륙년쯤 지났으니 껌도 귀한 시절이었으니까 껌을 씹는 줄로만 알고 ‘야, 같이 씹자’ 했다. 그 시절엔 친구가 씹던 껌도 받아 씹었으니까. 그런데 이 친구,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더니 조그맣고 바짝 마른 무엇을 주는 것이다. 뭔고 보니, 하얗게 생긴 도라지 같은 뿌리였다, 먹어 보니 약간 쓴 맛이 나면서 아주 딱딱했다. ‘이거 뭔데?’ 물은즉, ‘인삼이다, 이 바보야’ 나는 졸지에 바보가 되어 버렸다. 이 친구는 자기 엄마가 시내의 약방주인이었기에 늘 인삼을 가지고 와서 먹었으니 키도 크고 얼굴도 달덩이같이 함지박얼굴이었다. 이때 나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옆의 한 친구가 끼어드는 장면 한번 보소, “ 우리 엄마는 다섯 명이다, 나의 엄마는 그 중에 넷째다, 한 번씩 우리 큰엄마한테 가면 바나나 실컷 먹는다, 우리 큰엄마, 나에게 엄청 잘 해 준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큰엄마 자랑한 그 친구네집, 엄청 복잡합디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랑하는 혀를 끊어 버리신다 하였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극단적인 말씀을 하셨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 이제 와서야 깨닫게 하시다니, 신문기사의 한 토막이지만 어느 영국 의학전문 잡지에 실린 연구결과를 보니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말 속담이 사실이었다. 임상통계에 의하면 사촌이 논 샀다는 말을 듣고 실제 배가 아픈 자들이 대부분이었단다. 아담 이후, 타락한 사람이란 존재는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보아 준다. 그래서 남이 자랑하는 것을 들으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시기심과 질투가 솟아나고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나며 심하면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랑은 듣는 자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이를 잘 아시고 자랑하는 혀를 끊어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자랑하고 싶으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라, 바울처럼.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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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가족

작은 행복 2017. 1. 4. 13:19 |

 한 해의 마지막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라 안의 산적한 문제들로 마음이 심히 심란해 소파에 앉아 있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이는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올해 나 다 쓰지 않은 휴가가 엿새 남았어. 연말연시, 공휴일까지 포함하면 열흘이야, 우리 어디 가자” 하는 전화였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러고 끝이었다. 또 며칠 후 “아빠, 나에게 마일리지가 남았거든, 올해 안에 꼭 써야 해, 안 그러면 소멸해 버리거든, 그러니 꼭 가자. 우리 어디 갈까? 아빠가 늘 유럽 한번 가고 싶다 했잖아, 파리 어때? 좀 생각해 봐” 또 일방적 제안 후에 끝이었다. 가끔 엉뚱한 데가 있지만 나에겐 가장 소중한 둘째 딸의 제안에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데 경비도 문제지만 나머지 자녀들이 켕겼다. 가족! 가족이 무언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전우가 아닌가? 그렇다면 기쁨도 슬픔도 함께해야 하는 게 가족이 아닌가?

 


 “아빠, 생각해 봤어? 지금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이라 파리는 너무 혼잡할 것 같아, 소매치기 당할 위험도 있고, ‘꽃보다 할배’로 소문난 스페인 가자, 경비는 걱정 마, 내가 다 알아 할 테니까” 언제나 일을 저지르고 나면 그 뒷감당은 책임지는 멋진 딸애 덕분에 우리 가족의 스페인 자유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2월 22일 밤 8시30분, 인천 국제공항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나, 아내, 둘째딸, 그리고 부산의 큰손자 이렇게 네 명이었다. 나머지 가족들은 생계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큰손자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인데도 체격이 우람하여 가끔 고등학생으로 취급 받기도 할 정도로 키가 크다. 그보다 더 대견한 것은 이 아이의 몸에 밴 국제 감각이다. 공항에서의 수속과 세련된 일처리나 매너는 수준급이다. 아마 어릴 때부터 몇 번 아빠, 엄마를 따라 바깥세계로 나가 본 경험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젊은이에게 글로벌 감각을 익혀 주는 가장 빠른 길은 국제공항을 밟게 하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밤 0시 50분발 카타르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이륙한 우리는 8시간의 비행 후에 사우디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중간 기착지인 도하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도하공항은 환승을 주로 하는 허브공항이라 수많은 승객이 여기를 거친다. 유럽이나 아프리카를 가려면 여기를 대부분 거친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아홉 시간을 머문 후에 다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여덟 시간의 비행으로 노독이 심했지만 그래도 감사한 게 딸애의 세심한 배려로 나와 아내는 비즈니스석을 타고 왔기 때문이다. 나에겐 여러 번의 비행경험이 있지만 비즈니스석은 워낙 비쌌기에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과분한 호강을 하게 되다니.



 도하공항은 여느 공항과는 조금 달랐다. 오가는 대부분의 승객이 아랍인이다. 꼭 아랍 복색 전시장에 와 있는 기분이다. 남자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의 복색을 입고 있다. 바지 위에 반쯤 오는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테 없는 둥글고 붉은 모자를 쓴 남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남자는 몸 전체를 눈부신 흰색 천으로 통옷을 만들어 입고 머리 역시 눈부신 흰색 천의 두건을 두르고 이마 위쪽으로는 둥근 타반을 둘렀다. 아랍 특유의 구리수염에 짙은 눈썹, 오똑한 콧날, 알맞은 키에 정말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따로 없다. 상당히 귀족적으로 보인다. 여인들 중에는 머리에만 히잡을 쓴 이도 있지만 머리부터 전신을 새까만 통치마로 장식한 여인들도 있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부유층에 속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블랙골드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갑자기 내 나라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냉혹한 국제 파고에 휩쓸리면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던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내 나라를 생각하면서 나의 두 눈에선 이슬이 맺힌다. 이모 옆에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에 열심인 손자를 보며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세계 속에 당당하고 행복해야 할 텐데…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인천 공항에서와는 달리 탑승객 중에 한국인은 거의 없다. 이제 열 시간을 더 비행하여야 한다. 노독이 쌓여오지만 마음을 즐겁게 먹으려 한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떤 경우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모두 합쳐 열여덟 시간의 비행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게 내 나이에 쉽기나 한 일인가? 평생을 집 안팎만 맴돌다 끝내는 인생이 얼만데 이렇게 지구의 반대편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선택받은 축복인가, 감사할 뿐이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튿날 새벽 두 시, 바르셀로나공항에 안착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주소를 건넸다. 고맙게도 주소대로 사십여 분 만에 정확히 집 앞에 우리를 인도한다. 흔히 듣는 바가지요금도 없다. 고맙기 그지없다. 숙소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했기에 주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부부 같은데 얼마나 친절한지 꼭 이웃사촌을 만난 기분이다. 간단한 가이드를 받고 우리는 짐을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 포장 김치, 김 등으로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시내 투어를 나가기로 했다. 여기는 지하철이 잘 되어 있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건축계의 거장 가우디와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와 미로를 배출한 도시다. 자연히 우리 일행은 미술관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찾은 미로 미술관은 바르셀로나 시가지 한 가운데 있는 축구장 스무 개 정도의 펑퍼짐한 언덕 한쪽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미술관은 미로의 풍부한 작품들로 잘 전시되어 있다.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어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언덕에는 또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황영조 선수가 바로 여기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곳으로 유명하다. 메인스타디움을 돌아보며 저 멀리에서 언덕배기로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오는 황영조 선수를 본다. 장하다. 여기 지구의 반대편에 한국의 혼을 심어 두어 지금 이곳을 찾는 우리를 감동시키다니. 메인스타디움 관광을 마치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도로를 따라 아래로 십여 분 내려오니 멀리 지중해의 검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더없이 푸른 바다는 에메랄드빛 그대로다. 부둣가 선착장에는 크루즈선 한 척이 정박해 있다. 정말 평화롭고 낭만적이다. 우리 일행은 전망대 카페에서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며 따끈한 한 잔의 커피로 객창감을 달랜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그러기에 중세의 건물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가톨릭 대성전이다. 대성전은 규모에 있어서도 압도적이지만 그 정교함이 천하일품이다. 대리석 기둥과 웅장한 정문, 하늘로 치솟은 첨탑과 십자가, 수많은 인물과 동물의 조각으로 건물 자체가 온통 거대한 조형물이다. 인간이 정말 만든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의안이 벙벙하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성탄절이었기에 미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나는 미사 중의 신도들 사이로 조용히 비집고 들어가 대성전 중앙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돔으로 된 둥근 천장 벽면에는 각종 인물과 천사로 양각된 조각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 열두 사도나 속사도 내지 수도사들의 얼굴이 아니겠나 생각되어진다. 대사원의 중앙 홀을 둘러 양옆으로는 다시 통로를 만들고 외벽을 쌓고 낭실을 수없이 만들어 각기 낭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도사들을 조각하여 입상을 세우고 촛불을 켜 두어 신도들로 참배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 섬기는 자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는 없었다. 시내 중심가에 산재되어 있는 가우디에 의해 창조된 건물들을 찾아 그 조형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바르셀로나 여행의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바르셀로나의 바닷가에는 한 손에는 세계지도를 쥐고 멀리 대서양을 응시하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높이 서 있다. 이곳은 관광객으로 일 년 연중 붐비는 곳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콜럼버스를 바라본다. 에스파냐(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1492년에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앞선자의 선견(先見)을 부러워하며 그 용기, 그 결단을 나와 나의 후손들도 가져 주기를 소망한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현대미술관과 피카소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가 초기에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그래서 1915년부터 약 삼 년간 활동한 작품을 중심으로 동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관람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그야말로 피카소가 이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고풍스런 도시, 역사가 멈추어 버린 도시인 것 같지만 사람들은 한 시대를 만든 사람을 보러 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유산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마드리드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치고 오후 3시경 우리 일행은 상트역으로 향했다. 마드리드행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두 도시는 사백 오십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랑페로 두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프랑스에 떼제베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랑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차에 올라보니 놀람 그 차체다. 우리의 KTX와는 비교가 안 된다. 좌석 간의 간격도 넓고 시트도 너무나 고급스럽고 안락하다. 정말 사람을 배려함이 여실이 묻어난다. 마드리드에서의 숙소는 더 고급스럽다. 주인 청년의 친절함과 준비된 배려가 신뢰를 자아낸다.



 마드리드 여행의 시작은 소울광장이다. 시내 어디서든 메트로를 통하여 이 광장에 나올 수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아홉 거리가 팔방으로 뻗어있고 무수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광장 중앙에는 시티투어 판매소가 있어 이곳에서 여러 방면의 시티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 마드리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건축물들의 조형미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투어버스를 이용하여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이층버스의 맨 앞좌석에 앉으니 시야가 탁 틔여 한 눈에 시내 전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대부분의 고층 건물들은 대리석으로 지어졌고 전면에는 여러 모양의 조각상들이 새겨져 있어 예술미가 극치를 이룬다. 개중에 어떤 건물은 중세기 건물이 아닐까 생각되어질 정도로 고색 찬란하기까지 하다. 또한 우리는 이들의 일상적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유럽은 시내 중심가에 레스토랑이 많다. 레스토랑마다 메뉴판을 밖에 비치해 두기 때문에 관광객에겐 굉장히 편리하다. 메뉴와 가격을 알기에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고 바가지요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좋다. 일 년 연중 관광객으로 붐비는 이곳에선 이 또한 관광객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케팅이 아니겠는가? 우리도 이런 지혜를 좀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없으면 배우든지, 비꼬지만 말고.



 거리의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노천카페, 겨울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 노천카페는 개업 성황 중이다. 나 홀로족을 찾아보기 힘들다. 쌍쌍이 아니면 가족끼리, 친구끼리, 그야말로 끼리끼리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왁자지껄 요란스럽다.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우리 부부에게 지나가는 연인들이 다정한 눈인사를 선물한다. 옆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연신 말을 입 속에서 굴린다. “여보, 당신은 저렇게 굴리겠어?” 옆의 아내에게 뚱딴지 같은 질문을 하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싱긋 웃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정작 대화가 있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남남끼리 만나 무슨 할 말이 있나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남남끼리 만났으니 더더욱 대화가 필요하다. 모든 것이 다르기에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여 배척하기 전에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를 넘어 담소의 단계로 더 나아가 연인같이 정담을 주고받으며 일생을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와 아내가 시내 중심가 이층 건물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씩을 시켜놓고 거리로 오가는 군중들을 살핀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달리 중년 부부가 많다. 모두들 거리를 오가며 팔짱을 끼고 다정히 걷는다. 거리고 연신 혀를 굴린다. 무슨 말이 저리 많은지? 그러나 말이 많은 만큼 행복하다. 늙어서 말이 없는 부부만큼 살맛 없는 부부가 있을까? 늙어서도 몸매를 가꾸는 아내, 늙어서도 매력 있는 남자로 여전히 배려하는 남편,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이것을 확인하고 간다. 메트로역 한쪽 코너와 광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거리의 악사들, 그들의 그 진지함과 아름다운 선율이 나의 심금을 울린다. 고맙고 감사하다. 다시 한번 찾고 싶다. 마드리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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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

묵상 2016. 5. 3. 12:57 |

 족히 5미터도 더 될 듯한 방음벽 위로 살금살금 기어오르더니 마침내 정상에 이르고는 한 고개를 넘어 뒷 등허리까지 다 점령해 버릴 기세다. 한 해의 사분의 일을 이 낯선 서울에서 보내야 하는 길고도 지루한 겨울 동안 나는 이 상계고등학교 담벼락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담쟁이를 바라보면서 노원 롯데백화점으로 향하곤 한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주의 깊게 보게 된다. 그때는 물론 내가 신호대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멍청히 서 있을 때이다.



 싱그러운 5월의 첫날이다. 오늘도 상계고등학교 담벼락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들은 수많은 촉수로 가파른 수직의 벽에 발을 내리고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조심 조심, 위로 올라 마침내 연초록 물감으로 그 우울하고 답답했던 겨울의 무거움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간밤에 내린 비로 말끔히 먼지가 씻긴 잎들이 너무 영롱하여 길 가던 나를 멈춰 세운다. 생명이 충일한 잎들이 등교하는 수많은 젊음에게 축복을 선사한다. 담쟁이 잎이 아름답지 않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담쟁이만큼 고마운 넝쿨식물도 더물다. 칙칙한 담벼락에 푸르름을 선사하고 무너질 듯 불안한 담벼락을 제 몸으로 얼기설기 얽어매어 안전을 선사하고 때로는 코흘리개들의 물티슈 대용으로도 쓰이지 않는가? 가을의 단풍은 또 어떤가? 담쟁 잎만큼 아름다운 단풍을 나는 보지 못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나는 담쟁이 잎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대학 캠퍼스를 찾곤 한다. 공과대학 서편건물의 사분지 삼을 점령한 담쟁이 잎이 가을햇살에 반사될 적이면 세상은 온통 반․고흐의 캠버스 위에 짓이겨진 진홍의 유화 그대로다. 담쟁이 잎은 자기를 불태우며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세상은 담쟁이 잎을 주목하지 않는다. 늦가을이 되면 담쟁이 잎은 거저 귀찮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낙엽 수거자루에 담겨 어디론가 실려가 버리는 것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는 빌라도가 자기 앞에 붙잡혀 온 예수에게 한 질문이다. 세상을 살 만큼 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 번쯤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정말 혼란스럽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낙엽 수거자루에 실려가 버리는 담쟁이 잎처럼 실려 가 버리는 것 같다, 주목받지 못한 채. 사람은 최소한 주목 받고 살아야 한다. 주목 받음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게 되고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나는 삼심여 년 교단에 서 오면서 주목 받는 사람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주목 받지 못하는 담쟁이 잎이 작가 오․헨리에게서 ‘마지막 한 잎’으로 거듭나고, 시인 수필가에게서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조경사나 화가에게서 재조명을 받지 않는가? 그렇다면 담쟁이 잎을 재조명한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나는 오래 전에 나의 블로그에 ‘사랑하면 보인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빌라도는 자기 앞에 세워 두고도 그가 곧 진리임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 수 없었고 그러기에 그를 십자기에 내어 주지 않았는가? 진리는 공허한 관념도 아니요 심오한 이론도 아니다. 길이요 생명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모든 인류의 그리스도(구세주)가 되어 자기 몸을 주어 만 사람의 몸을 사고, 자기 생명을 주어 만 사람의 생명을 산 것이다. 이 모든 동력(動力)의 원천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기를 떠나간 제자들을 부활 후에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시었다. 사랑은 평강을 만들어 내지만 탐욕과 아집은 끊임없이 미움과 증오, 분노와 울분을 만들어 낼 뿐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진정 사랑하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주목 받는 자로 나 자신이 바꾸어질 것이며 평강을 만들어내는 자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자로, 더 나아가 주목 받는 자를 만드는 자로 나 자신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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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비전 2015. 10. 6. 12:11 |

 반가운 단비가 내린 캠퍼스는 방금 목욕한 아기같이 해맑다..가을 햇살에 주홍으로 물들어가는 싱그러운 잎사귀들이 너무 고와 눈부시다. 보도 위를 걷는 젊음의 물결이 짙은 초록의 나뭇잎들과 잘 배합되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정말 부럽다. 나에게도 이런 날들이 있었던가. 오랜만에 시립대학 캠퍼스를 찾아 깊어가는 가을을 맛본다. 이제 멀지 않아 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하며 자기 몸을 잔뜩 움츠리겠지? 그리고 또 얼마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분신들을 허공에 날려 보내야 하겠지? 그러면 이 캠퍼스는 온통 낙엽으로 뒤덮일 것이고 숲속 연못에는 잎의 잔해들로 물이 탁해지겠지? 문득 하늘을 본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보며 잠시 우울해진 나의 마음을 날려 버린다. 그리고 발걸음도 가볍게 젊음의 대열 속으로 합류한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광복 칠십 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나는 1945년 해방둥이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감회가 더욱 새롭다. 나와 같은 동년배의 삶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해방둥이들은 치열한 삶을 살았다 할 것이다. 나는 빈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곱 살에 한국 전란이 일어나자 부모님을 따라 마산으로 피난하여 그곳 피난지 마산에서 아홉 살에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마산은 전쟁 통에도 적화되지 않은 몇 안 되는 도시였기에 토착민 반, 피난민 반으로 전쟁고아의 천지였다. 그러기에 1학년 한 반의 정원이 칠십명을 넘었다. 게 중에는 코 밑에 제법 시커먼 솜털이 난 형님들도 있었다. 작게는 일곱 살부터 열 살 넘는 아이까지 천막 수업을 받았으니 낭만은 그야말로 외계인의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대학 캠퍼스를 자주 찾는 것은 나의 학창시절, 초등에서 대학까지 맛보지 못했던 낭만을 이제라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캠퍼스를 거닐면서 젊음을 보고, 그들의 꿈을 보며 나의 낭만과 꿈을 확인할 때 나는 무한한 희열과 행복을 맛본다.

 

  그런데 지금 이 낭만의 캠퍼스가 고민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중심에 서야 할 그들이 아파하고 있다. 혹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도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 아파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 아픔이 생명을 죽이는 병의 인자가 아니라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그 아픔은 나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더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던 나의 청춘 시절, 우리는 삼류 영화관에서 영화 자이안트를 보면서 꿈을 키워갔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텍사스의 광활한 평원을 질주하는 자동차 대열을 보면서, 메마른 황야에서 석유 시추에 목숨을 거는 제임스•딘의 구리 빛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다. “친구야, 우리 미국 땅에 도전하자.” 그날 그 자리에서 함께 다짐했던 나의 고교 벗 다섯 중에 셋이 지금 미국에 둥지를 틀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지금 생명을 서서히 옥조여오는 죽음의 인자와 고된 싸움을 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내가 읽은 어느 철학자의 책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암이나 에이즈가 아니다. 이것들은 인간의 육체를 파괴하고 정신을 피폐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이나 영혼을 파괴할 수는 없다. 그 반증으로 이러한 무서운 질병과 처절한 싸움을 벌이면서도 위대한 저서를 남기거나 불후의 명곡을 남긴 작가나 작곡가가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면 가장 무서운 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절망이라는 병이다. 문화 인류학에서는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라 정의한다. 이는 인간은 희망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명백하다.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희망을 선물로 주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인간만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니니 평강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느니라(렘29:11)"

 

 어떤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일까? 행복에도 여러 가지 갈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다분히 주관적이라 생각하기에 나의 행복이 남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례는 주위에서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악(邪惡)하다. 그러기에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인간(person)을 페르소나(persona)라 하는 다른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르소나는 원래 탈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정체는 언제나 가리어져 있다. 탈 뒤에 숨겨진 실체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자신의 실체를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할 수 있다. 인간들이 그렇게나 추구하는 행복은 대부분 본질적 행복이 아니라 현상적 행복일 뿐이기에 그 현상이 사라지면 행복감도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첫째는 아직까지 건강하여 일할 수 있는 기쁨이요, 둘째는 아직까지 나에게 일할 데가 있다는 기쁨이며 셋째는 나룰 믿고 나를 기다려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행복은 돈이나 명예 따위의 현상적 행복과는 무관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나의 하나님, 하루를 설레며 기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위의 사람에게 행복을 주게 하소서” 조용히 기도해 본다.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심지어 N포세대니 하는 말이 언론매체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요사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음을 본다. 영어로 n은 무한대를 뜻하는 말이니까 요즈음 젊은 세대 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자들이 많다는 말이 아닌가? 일부 언론이나 방송, 잡지들에서 빈정대듯 내뱉는 무책임한 이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 청춘들을 더 많이 아프게 하는가? 대안 없는 말만 무성하면 열매 없는 잎만 무성한 나무와 무엇이 다른가? 세 가지는 포기할 수 있다 치자.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연애나 결혼 출산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사는 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에 스스로 연애, 결혼을 포기한 자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러나 희망이나 꿈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포기하는 일이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제일 행복해 보일까? 자기 일에 열정(熱情)을 가지는 사람일 것이다. 바로 그 열정의 동력(動力)은 무엇인가? 꿈이요 희망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상황 앞에 주저앉지 않는다.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길은 보이는 법! 길이 없으면 내가 길을 만들면 된다. 내가 가면 길이 된다. 인생 후반기에 조국을 떠나 라오스의 오지에서 육년 만에 커피농장을 일군 장한 한국인이 있음을 본다.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눈을 들어 멀리 보자. 세계가 나의 시장이요 나의 삶의 터전이 아닌가? 젊은이여 블루오션의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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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작은 행복 2015. 6. 2. 00:32 |

 요사이 아내는 나에게 심심찮게 묻는다. “여보, 요사이는 글 안 쓰세요?” 그러고 보니 글 안 쓴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난 것 같다. 작년의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내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후 아예 쓴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요사이 글을 쓴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의 글이 바람에 흩날려 다니는 하찮은 휴지조각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꼭 이 말만은 하고 싶어졌기에.



 어제 아내를 따라 의정부시에 있는 코스트코에 갔다. 쇼핑을 하고 내가 즐겨 사 먹는 쇠고기베이크도 하나 사서 즐겁게 이층 주차장으로 올라와서 쇼핑백을 내 차에 싣고 있는데 옆에서 한 중년 신사 한 분이 쇼핑백 몇 개를 차 뒤트렁크에 싣고 있다. 참 인상이 좋다. 수수한 아웃도어 차림에 흰색 러닝화를 신었다. 전형적인 가장상이다. 그런데 차가 에쿠스450이다. 이때부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저쯤 되면 돈으로는 대한민국 1%다. 영국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는데 한국에서는 왜 그렇지만은 않은가? 부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가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부터 삼사십년 동안은 희망의 시대였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였다. 가난의 대물림을 나의 시대에 와서 끊어 버릴 수 있었다. 실력 하나로 대기업의 임원도 되고 창업해서 대기업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사회로 회귀해 버렸다고 탄식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부와 지식의 대물림이 고착화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더러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를 삼포세대라 부른다.



 나는 사회학자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다. 한국이 이렇게 되어버린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도 없다. 다만 사랑하는 아들과 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자를 거느린 할아버지로서 이 나라가 지구상에 존속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 서 있기에 나뿐만 아니라 오천만 국민은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일 때문이다. 내 나라는 나와 나의 후손이 두 발을 엉버티고 살아가야 할 땅이다. 그러기에 한 가지 미덕(美德)만 가져 달라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바로 한 단계씩만 낮춰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만약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을 정확히 안다면 세상의 절반을 얻었다 할 수 있다 하겠다. 왜냐하면 세상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그 정답을 모르면 최소한 얻은 것의 절반 이상을 도로 잃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어릴 때 호랑이가 제일 무서운 줄 알고 자랐다. 밤잠을 안 자는 아이에게 ‘호랑이 온다’ 하면 울던 울음을 뚝 그쳤으니까. 내가 어릴 때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무릎 위에 나를 눕히고 수수께끼 하나를 하셨는데,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고 아가리 쩍 벌린 게 뭐게?” 한다. 답을 몰라 동그란 눈망울만 굴리면서 엄마의 입만 바라보는 아들에게 엄마는 “아궁이” 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말 속에 무궁무진한 진리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의 온 산이 민둥산이었다.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산에 그나마 남은 나무는 먹고살기 힘든 백성들의 땔감으로 마구잡이로 베어져 버렸기에 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그러니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은 것은 아궁이가 맞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그것은 바로 탐욕이다. 성경은 밝히 말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하였고 또한 “욕심(탐욕)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죽음)을 낳느니라” 하였으니 이보다 더 명쾌한 정답이 어디 있는가. 탐욕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탐욕은 블랙홀이다. 가족, 체면, 윤리 도덕, 이런 것들이 탐욕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의 그 무엇도 탐욕의 질주를 막을 수 없다. 탐욕은 과도한 욕심이다. 물론 알맞은 욕심은 개인이나 사회를 성장하게 한다. 우리가 바라는 발전적 욕구,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지구는 새로운 희망적 욕구로 진보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 희망적 욕구가 한 사람이나 몇몇 특수집단의 이익으로 변질될 때 무서운 탐욕으로 바뀐다. 아내나 자식보다 돈이 좋게 보일 때 경고신호, 아내나 자식보다 돈을 선택할 때 범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경고신호를 의식하지 않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기 일쑤다. 돈의 힘에 끊임없이 찬탄을 보내면서 다른 모든 것은 하찮게 보기 시작한다. 이 단계가 돈에 중독된 중증단계, 이쯤 되면 갈 데까지 다 간 단계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돈을 섬긴다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탐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돈보다 사랑하는 자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탐욕과 싸우는 훈련을 해야 한다, 최소한 한 단계 낮추는 훈련만이라도. 에쿠스를 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제네시스를 탄다면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 자기가 가진 능력을 다 누리지 않고 이웃을 위하여 한 몫만 남겨 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자기 밭에서 곡식단을 거두는 농부는 밭에 떨어진 이삭을 다시 줍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 나무의 과일을 따고 다시 돌아보아 따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 가난한 자, 나그네를 위하여 한 몫을 남겨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나의 욕심을 꺾는 연습은 한 단계 낮추는 훈련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과 함께 시민공원에 바람 쐬러 나가보면 행객들이 여기저기 마구 버린 휴지더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때 한 단계 훈련을 나부터 실행할 일이다. 내가 안 버리기 훈련은 첫 단계요 버려진 휴지를 줍는 것은 두 번째 단계가 아닐까? 행복은 먼데 있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바깥으로 나와 보니 아파트단지 사이의 보드블록에 씹다버린 껌들이 흉물스럽게 덕지덕지 눌러붙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돌려 집으로 올라가 껌 제거용 주걱칼을 찾기 시작했다. 퇴직하며 갖고 나온 소중한 보물이다. 그날 나는 껌 제거에 한나절을 보냈다. 그날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날까지 타락한 인간은 탐욕이라는 적과의 동침을 피할 수 없다.그러나 그 탐욕이라는 적을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러면 행복한 날이 올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탐욕과 싸워 이겼다는 보람은 탐욕을 제어하고 남을 위해 한 몫을 남겨 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이다. 얼마 전에 신문 기사에 난 화제 한 토막,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 중에 어떤 한 분은 아직 개인 승용차로 카니발을 탄다고 하는 기사였다. 그것도 십여 년째 동일한 그 차란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재산이 최소 몇 천억일 터인데. 만약 나라면 가능한 일일까 생각할 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만약 내가 수백억의 재산가가 된다면 현재와 무엇이 달라질까? 차부터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어’를 오늘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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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탐욕2

비전 2014. 5. 13. 09:08 |

 싱그러운 신록의 숲 사이로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참 오랜 동안 기다려온 봄비였기에 더욱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젯밤부터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나는 잠을 설쳤다. 어젯밤에는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나는 창문을 열고 기린처럼 목을 길게 늘이고 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차가운 감촉을 즐기면서 모처럼 마음이 한가로웠다.



 4월은 참으로 잔인한 달이던가! 딱딱한 땅껍질을 헤집고 나오는 새순의 반란(反亂)을 보며 영국의 한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던데,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 뒤에 봄이 온다면 4월은 잔인하여도 좋지 않은가. 그러나 이 땅에는 지금 새로운 대지(大地)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깊고 푸른 바다가 이 땅의 봄을 묶어 버린 채 우리네 소중한 아들과 딸들을 삼켜 버리고 한 마디 말이 없다.



 그렇게 잔인한 4월이 가고 5월의 봄비가 대지를 흠뻑 적셨지만 봄은 여전히 겨울에 묶인 채 시청 앞 광장 한 모퉁이에 분노로 맴돌고 있다. 합동분향소엔 아직도 조문객들이 끈이지 않는다. 깃대에 매달린 노오란 리본들과 광장 잔디밭 위의 노오란 종이배들만이 저 깊고 푸른 바다를 향하여 저 마다의 사연을 토해내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이곳 분향소를 찾았을 때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이 이때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내 뒤로는 대부분 젊은이들이 도열하여 있었기에 자꾸만 뒤통수에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손등으로 거기를 가리고 서 있을 수도 없고…이날처럼 모자를 쓰고 오지 않음을 후회한 날도 없다 .왜냐면 내 머리 중 흰머리가 뒤통수에 가장 많았기에. 조문객들이 정렬해 서 있는 머리 위에는 따가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차일이 쳐져 있고 천정에는 수많은 글귀들을 쓴 종이들이 펄럭이는데 하필이면 ‘어른들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글귀는 왜 그렇게도 선명하고 크던지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미국에서는 십만 부가 팔렸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백만 부 이상이나 팔라는 밀리언셀러가 되었다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의에 목말라 하는가? 시중의 서점가에는 정의와 관련된 책자는 넘쳐나는데 홍수 때는 정작 먹을 물이 없다더니 정의로운 사회는 왜 아직도 요원한가? 홍수 때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될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탐욕적인 존재인가를 알게 되면서 나 지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소름이 끼쳤다.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내가 어릴 때는 할머니와 손자가 깊어가는 밤에 수수께끼를 할 때가 많았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묻기를, ‘이 산, 저 산 다 잡아 먹고 아가리 쩍 벌린 게 뭐게? ’ 그러면 손자는, ‘아궁이’ 한다. 할머니가 반색하며 대답 왈, ‘그래, 맞다’ 탐욕적 인간은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고도 부족하여 아가리 쩍 벌린다.



 어쩌다 광화문 광장에 나갈 때면 나는 세종대왕 동상을 무관심하게 지나치거나 아니면 곁눈질로 흘깃 보고 지나치는 게 일쑤다. 삼십여 년 동안 훈민정음으로 먹고 살았으니 나보다 세종대왕을 더 잘 아는 자 없으리라는 오만과 편견의 소치(所致)리라. 그러나 이 자만은 곧 무식의 소치요 오만의 발로에서 시작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인데 모르면서 안다고 하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지 않은가. 세월호의 침몰은 총체적 부실 때문이다. 선장과 선원, 선사(船社)와 감독기관, 그 어느 곳에도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이번의 대 참사를 통하여 세종대왕을 조금 알 것 같다. 조선 오백 년 동안 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유독 세종과 정조가 후세인의 사랑을 받는다. 왜일까? 역대 어떤 왕들도 못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서얼(庶孼)을 관리로 등용한 일이다. 서얼들을 관리로 등용한다는 일은 당시에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못할 일이다.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존엄하다는 사상으로 무장된 애민정신(愛民精神) 말이다.



 요사이 우리나라에는 오바마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산업화세대나 그 이전세대는 대부분이 미국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고 대단히 합리적이다. 그들이 오바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도 다소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미국 역사상 백 년 동안 끌어왔던 숙제를 오바마 대통령이 풀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건강보험 개혁안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므로 삼천 이백만 명의 서민층이 새로이 의료혜택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서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동일하다. 오바마는 미국에서 상대적 소수계층인 흑인, 아시아계 이민층이나 히스패닉계 이민층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공화당과 싸우면서 마침내 이 법안을 상․하 양원에서 통과시키는 승리를 얻어냈다.



 나는 이번 국가적 대 재난을 겪으면서 나 자신을 겸허히 반성해 본다. 그리고 나의 남은 삶을 어떻게 정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아주 오랜 일이 생각난다. 나의 교사 초년생 시절의 일이다. 고 2학년 담임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전 가족이 종적을 감추어 버린 해괴한 사건이 있었다. 갑자기 천애의 고아가 되어 버린 제자를 바라보며 나는 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아내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제자를 나의 집으로 데려오고 말았다. 오륙 개월 후 누나라 하는 자가 학교로 찾아와 그 학생을 데려가기까지 나는 귀여운 딸아이와 함께 아내와 넷이서 방 둘 딸린 13평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아내는 그때 둘째를 임신 중이었지만 내가 저지른 일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고 한없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제 자판 앞을 떠나려 한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성경(갈5:14)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이로 보건데 정의(正義)는 곧 이웃사랑이다.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정의인가?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정의(正義)다. 크리스천이면 응당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사랑하여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는 일이다. 세상에는 항상 가난한 자가 있을 것이니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네가 구제할 수 있을 때 구제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겸손히 귀를 기울여 나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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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보인다.

묵상 2013. 11. 25. 16:31 |

  창밖의 느티나뭇잎에 늦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다. 나뭇잎들이 셋에 둘은 떨어지고 이제 그 하나만 남아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느티나뭇잎이 처음에는 노랗게 물들었다가 다음에는 붉게 변하고 떨어질 때쯤이면 검붉게 물들어 땅 위에 갈린다는 사실도 서울에 와서 살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만큼 나의 서울생활이 하루가 소중하고 고마운 날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무심히 보던 나뭇잎 하나도 유심히 보게 되고 관심 있게 보게 된 소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흔히 단풍하면 진홍색의 붉은 단풍을 연상한다. 그러나 단풍에는 노랗게 물드는 단풍들도 있다. 특히 한여름 내내 실실이 푸르던 수양버들이 늦가을에 노랗게 물들어 연못가에 가지를 드리우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내가 즐겨 찾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연못가 벤치에는 오늘도 선남선녀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젊음이 있고 낭만이 넘쳐나는 대학 캠퍼스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달려가는 한 시니어가 젊음과 함께 오늘도 남이 보지 못하는 노란 단풍을 보너스로 보면서 사랑하면 보인다는 진리를 깨친 사람에게만 허여(許與)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조금 있다 중랑천으로 나가볼까 한다. 반가운 손님들의 귀환(歸還)을 보려 함이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손님이지만 내 마음의 한켠에는 무거움이 가시지 않는다. 양계농을 하는 농민들의 한숨소리 때문이다. 이들이 조류독감을 몰고오는 주범이라고 방송에서 연일 보도를 쏟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은 참 어려울 일, 세상은 고루 공평하지 않다. 그러기에 겨울에는 가정마다 닭 한 마리 더 먹기 운동을 벌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반가운 철새들의 귀환을 기다리고 그들의 찬란한 비상(飛翔)을 이 땅의 강과 호수 어디에서나 마음껏 볼 수 있기에 그러하다.



 오래 전의 추억이다. 어느 모진 겨울밤, 나는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 추위가 옷 속을 파고들어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오는 내 발걸음이 퍽이나 빨랐던 것 같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와서 집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는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오는 한 모자(母子)상이 나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 그대로 묶어 버렸다. 한 여인이 조그만 연탄화로를 놓고 지하철 입구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군밤을 구워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등 뒤에는 귀여운 한 아기가 매달려 연신 콧물을 흘리며 앙증스런 두 손으로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자기 코를 비벼대도 있지 않은가. 얼핏 보기에도 그 여인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스카프로 머리를 살짝 동였지만 얼굴이 희고 이목구비가 또렸했다. 나는 그 순간 그 여인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의 손은 저절로 나의 주머니 속을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내 지갑을 꺼내들고 그 여인의 군밤을 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거기 군밤 구워 놓은 것 봉지채로 다 싸 주세요. 아기가 참 귀엽내요” 나는 그 여인이 팔려고 내어놓은 군밤 봉지들을 몽땅 다 샀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여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몽땅 다 사 주는 일뿐일 것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머릿속은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만한 인물이면 쉽게 살 수 있을 텐데, 그 길을 마다하고… 아! 그 엄마 고마워.‘”



 전에 내가 나의 블로그에 ‘아름다운 동행’이라 하여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 부부 한 쌍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이미 방송에 소개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방송을 보면서 참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부부라고 생각했다. 매일 방송되는 이야깃거리에는 정말 하잘것없는 것들도 많다. 어떤 프로는 시청자들의 비위에 맞추느라고 지식과 스펙을 고루 갖춘 이들을 패널로 등장시킨다. 프로를 짜는 입안자들은 구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대 착각이다. 구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식과 스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세상은 왜 더 자꾸 꼬여만 가는가? 소위 지식인이란 작자가 자행하는 만행들을 그들은 보지 못하는가? 지식과 스펙만 그렇게 좋아한다면 그들은 진정 맘몬주의에 맹종하는 굴종적 노예근성의 발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라 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말잔치 뒤에 남는 것은 허무와 공허뿐이다. 이것들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로지 사랑만이 가능하게 할 뿐이다.



 배에는 단 네 사람만이 타고 있을 뿐이다. 선장과 세 사람의 인부. 선장은 한 쪽 팔이 없고 나머지 세 사람은 외국계 노동자 청년. 이 배는 오징어잡이 어선이다. 선장은 고향 울릉도를 떠나 오징어의 이동을 좇아 연중 동해에서 서남해안으로 이동 중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입항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이나 될까? 바다에서의 생활이 태반이다. 바다에서의 일이야 소개할 필요도 없는 일, 한 마디로 극한 작업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해 주었던 일은 바로 선장의 진정성이다. 그에게 있어서 외국계 청년들은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다. 남이 어떻게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가? 사랑하면 보인다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그에게는 보이는 것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선장의 아내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 부부를 존경함을 금할 수 없었다. 배가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부두로 입항한다는 남편으로부터의 소식이 오면 아내는 불원천리(不遠千里) 남편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새벽이든 한밤이든 시외버스 터미널에 그녀는 서 있는 것이다. 남편을 만나기 위하여, 남편의 항구로 그녀는 가는 것이다. “선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선 새벽, 선창가에 서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입에서 하선(下船)하는 남편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의 말! 당신은 내 삻의 이유란 뜻이 아닐까(You mean everything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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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탐욕

묵상 2013. 9. 1. 08:35 |

 오늘은 고향으로 가는 날이다. 서울역 광장은 온갖 사람들의 물결로 넘쳐난다. 다들 물 찬 제비처럼 발걸음도 가볍다. 나는 맥도날도에서 빅맥을 셋트로 주문하여 플랫폼으로 내려간다. 8번 게이트를 지나 에스컬레이트에 몸을 기댄 채 아래로 얼음 타듯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옆의 젊은이들을 힐끗 쳐다본다. 도톰한 얼굴에 뽀얀 살결이 정말 아름다운 얼굴의 소녀다. 아마 막바지의 피서를 해운대로 가는 모양이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여행만큼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은 없다. 나는 벌써 고향의 들판을 달리는 소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열차는 홈을 빠져나와 남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다운타운을 다 지나기까지 나는 잠을 청하기로 했다. 선글라스를 벗고 시트에 몸을 맡기니 나른해지면서 잠이 온다. 얼마를 잤을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눈부신 정경에 나는 잠을 깼다. 차는 충복 영동을 지나고 있었다. 차창 밖은 온통 초록의 바다다. 싱그러운 팔월의 들판은 온통 파랗게 칠해진 한 폭의 수채화다. 언제나 보아도 싫지 않고 질리지 않는 푸르름. 너는 때론 강이 되어 흐르고 때론 산이 되어 그곳에 우뚝 서 있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바다로 모든 것을 휘몰아 가기도 하는 난폭자. 그러나 너 푸르름을 만드는 모태를 너는 아는가? 언제나 안아주고 품어주며 다 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실체(實體)는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바로 흙이 아닌가! 푸르름도 결국 한 줌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벋으며 무성한 숲을 이루어 들판과 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나의 눈앞에 펼쳐지는 푸르름의 파노라마를 보면서 내가 흙의 고마움을 새삼 발견하게 되니 이번 여행이야말로 나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여행이 아닐 수 없다. 문득 한 권의 책이 생각난다.



 뭐 읽을 게 없나 해서 딸애의 방을 기웃거리던 열흘 전쯤 전, 책 한 권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장하준 교수가 최근에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아! 인간 세계에도 ‘흙’과 같이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듯이 장하준 교수는 이제 흙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유명해졌고 세상이 다 아는 석학이다. 그런데 고마운 것이 그는 의도적으로 흙이 되어 살아가려 하는 모습을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한 해가 1990년부터라니까 한 지성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해 오던 최근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세계에는 정말 정의가 있었던가 되묻고 싶다. 정의(正義),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그것의 정의(定義)를 내릴 만큼 해박하지 못하다. 더더욱 나는 정의(正義)를 논할 만큼의 당당한 삶을 살지도 못한 한 사람의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정의에 관한 많은 저서들도 쏟아져 나와 있지만 이것들은 모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보게 된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세상에는 언제나 가난한 자들이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면서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지 말 것이며 장사하는 자들은 저울추를 속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다. 세상에는 언제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억누르는 자와 억눌린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가 있기에 고아와 과부는 내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인간은 정말 정의를 논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성경은 오히려 인간을 탐욕적 존재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어느 날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라는 사탄의 유혹을 받는다. 사탄은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다. 성경에는 탐욕과 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몇몇 구절이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이 두 구절들에서 보듯이 죄의 뿌리는 욕심 곧 탐욕이다. 그리고 탐욕의 정점(頂点)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과 같이 되려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의를 논할 가치가 없는 존재다. 근본적으로 타락하고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진노의 자식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버린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사이비 정의가 도처에 넘쳐난다. 난삽(難澁)한 지식적 정의나 나를 헷갈리게 하는 변증적 정의 등등. 그러나 이것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제물처럼 생명이 없다. 그러기에 감동이 없고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이런 때에 장 교수의 책 한 권은 나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나로 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으니 고마울 수밖에. 경제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쉽게 이해되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 우선 고마웠고 방대한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통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어 더욱 애착이 가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것뿐이었다면 나는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이유는 전혀 딴 곳에 있었다. 장 교수가 크리스천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내가 아는 바는 없다. 다만 그의 책 속에서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정의 편에 서려 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본능적으로 권력에 약하다. 최근 삼십여 년의 세계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의, 주장이 현실화되는 강대국의 지배 세상이었다고 책에서는 밝히고 있다. 더더욱 영국은 자본주의의 발상지요 힘은 좀 잃었지만 여전히 강대국인 나라다. 그 중심에서 영국의 이념과 이상을 끊임없이 재창조해야 하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 어찌 주류(主流)에 속하고 싶은 유혹이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면서 강대국의 패권주의를 신랄히 비판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빈국(貧國)이나 동남아,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약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옹호하는 경제정책의 모델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정의를 온몸으로 실천하려 하는 한 지성의 리얼한 정의를 만나니 내 마음 참으로 흡족하다.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은 어려워 비록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의 따뜻한 인간애를 읽을 수 있어서 읽는 동안 내내 행복하였다.



 인생은 짧다. 영원히 살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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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날같이 뾰족한 창포잎 끝에 새벽이슬이 맺혔다. 어제 밤부터 세차게 내리던 마른장마 뒤의 폭우라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창가를 거반 가리는 느티나무 잎들 위로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나의 잠자는 동심(童心)을 깨워 놓는다. 황순원의〈소나기〉가 아니라도 여름날 소나기는 시원하다. 밤새도록 시원스레 내리는 소나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새벽을 기다린다. 새벽이 주는 새 세상을 보기 위함이다. 모두가 깨끗하다. 보드라운 비로드 천으로 곱게 닦아 놓은 듯 나뭇잎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풀잎마다 블루다이아몬드가 맺혀 있다. 투명한 이슬방울 속에 내 얼굴이 들어 있다. 육십여 년 전의 그 앳된 소년의 얼굴이.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행복할까? 사람들은 나름대로 행복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행복을 찾아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못할 짓들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정말 행복한 선물을 내가 태어날 때 이미 주셨다는 것을 세삼 깨닫게 된다. 그게 바로 불 수 있다는 축복이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그러하고 엄마를 닮은 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엄마, 이게 뭐야?” 아기가 태어나서 세상을 볼 때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다. 세상과의 대화의 첫 질문이 봄을 통해 시작된다. 만약 아기가 볼 수 없다면 세상과의 소통(疏通)이나 교분(交分)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볼 수 있다는 축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눈을 마음의 창(窓)이라 하지 않는가. 눈은 마음의 창을 열어 나와 너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게 하고 나와 너를 공유하게 하며 나와 풀잎, 뭇 새들과의 속삭임의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나는 요사이 태어나 이제 반년 남짓 된 손자의 해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모든 것을 읽고 있다. 손자의 눈동자는 나로 가족을 보게 하며 가족 너머 대양(大洋)을 보게 한다. 그리고 우주(宇宙)를 보게 될 때에는 만유(萬有)를 지으시고 나를 조성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러니 어찌 보게 되는 축복을 누림이 행복하지 아니한가!

 


 우리가 공원을 산책하거나 등산을 할 때면 꼭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한두 명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꺾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왜 이럴까? 꼭 꺾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잇는 욕망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 가지의 욕망을 경계하셨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면 누구나 생득적(生得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셋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육신의 정욕이다. 육신의 정욕은 그 끝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는 욕망이다. 그리고 안목의 정욕은 보암직한 정욕을 말함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먹음직한 정욕으로 나아가려 하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이 지으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 그러나 철저하게 안목의 정욕을 경계하신다.



 갤러리에 가게 되면 입구에 ‘보시기만 하고 만지지는 마세요’ 란 팻말이 붙어 있음을 본다. 이는 바로 안목의 정욕을 경계함이다. 자동차의 가속기능과 제어기능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나 정답은 제어기능이다. 왜일까? 제어기능을 소홀히 하면 오 분 먼저 가려다 오십 년 먼저 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제어기능을 잘 작동시키지 못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패가망신하게 된다. 요사이 항간에는 정말 바보 같은 일들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간 큰 남자들이 있음을 본다. 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종종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발 철 좀 들었으면 한다. 교수, 법관, 의사 등등 소위 최고의 도덕관을 지닌 자요 지성인이라는 자들이 지하철에서 성희롱을 하였다, 자기의 집무실에서 제자나 환자와 성희롱 내지 성폭행을 하려다 어찌어찌되었다는 기사로 거의 매일 일간지를 도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막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실망감을 가지게 된다. 반년만 더 살면 내 나이 고희(古稀)에 이르게 된다. 나와 같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렇게 배워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체득(體得)하도록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가속기능보다 제어기능을 더욱 소중히 배워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 중에 최고의 걸작은 여인이다. 그러기에 여인의 몸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축복이다. 르느와르의 누드화는 불멸의 명작이다. 나도 대가들의 누드화 보기를 좋아한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동양화 서양화 가릴 것 없이 누드화를 즐겨 본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칠 뿐이다. 보지만 꺾으려 하지 않는다. 여체의 신비를 통하여 하나님의 청조섭리를 보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꺾으려 할 때 비극이 발생한다. 순간적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여 나 자신을 파멸의 늪으로 던져버릴 것인가?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책임져야 할 가정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순간의 쾌락은 지극히 달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극히 쓰다. 욕망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순간의 쾌락에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걸 수는 없다. 한 순간의 쾌락이 나와 내 가정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족쇄가 된다는 것을 뼛속에 새길 일이다. 나는 언제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삶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하였으나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득죄(得罪)하리요” 하면서 말씀을 붙잡았던 요셉의 삶을 나의 삶의 지표로 삼아왔다. 어른이면 다 어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철 든 어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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