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복음과 다른 복음

공지사항 2011. 2. 8. 21:20
 

—나의 믿음이 바른 복음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복음에 근거하고 있는가


1. 들어가는 말

 

 안녕하십니까? 힛데겔입니다. 오늘 이렇게 저의 블로그를 통하여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저의 블로그에 앞서 올린 글 ‘복음의 능력’에 이어 오늘은 오랜 동안 교회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해 오신 성도 여러분들을 위하여 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지난 글은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분들을 위하여 쓴 글이라 한다면 이번 글은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성도 여러분들에게는 충격적인 글일 수도 있고 상당 기간 아주 혼란한 경우의 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는 저도 굉장히 혼란한 번민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집필하면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양심과 성령님의 도우심을 좇아 성경에서 밝히 말하고 있는 대로 정직하게 믿음의 본질에 관하여 썼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얻음이라(벧전1:9)” 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이 성경적으로 바른 복음에 근거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한번쯤은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잘못되면 나는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에게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나의 믿음을 다시 점검해 보는 일은 나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 있으며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나의 믿음이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이라 한다면 지금껏 믿은 나의 믿음은 모두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라고 성경은 또한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었는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내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나는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언제 내 속에 성령이 들어와 계십니까? 내가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들 나의 주로 고백할 때 내 속에 성령께서 들어와 계시지요. 다시 말하면 성경적인 바른 믿음을 가졌을 때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무언지 모르게 답답하고 찜찜하여 시원하지 못하고 늘 허전한 경우를 경험해 보지 못하셨나요? 이것은 내 속에 있는 영의 소원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영의 소원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으니 어찌 내 영이 갈급해 하지 않겠습니까?


2. 다른 복음


 여러분은 다른 복음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마도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릴 것입니다. 성경에서 다른 복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곳은 갈라디아서(갈1:6-9)와 고린도후서(고후11:4)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했으나 그가 떠난 이후에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주의자들 곧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 가만히 들어와 바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 즉 율법과 할례도 함께 행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였습니다.  이에 이방인이었던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교훈에 현혹되어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기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았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더러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 라고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다른 예수란 성경에서 밝히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온전히 속죄하신 나의 구원자이시며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분(빌2:6-10)을 부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만으로는 구원을 온전히 얻을 수 없으니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혼합주의 신앙, 율법주의 신앙 속의 불완전한 구원주인 예수를 다른 예수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단호히 말하건대 다른 복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3. 우리들의 현주소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대교회에서는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와 다른 복음을 좇아가는 무리는 없는 것일까요? 몇 가지 문답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도님은 지금 죽어도 천국갈 수 있습니까? / 아니오.

   왜 못가는 겁니까? / 해 놓은 게 있어야지요

 

 어떻습니까? 굉장히 겸손한 대답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대답 속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성경의 어디에도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로마서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이렇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의가 복음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음으로 나는 구원을 얻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선물을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나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은 결코 내가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에 얻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도다(히10:10)” 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라고 말합니다. 성도님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가 믿어지십니까? 히브리서 10장을 깊이 읽으시면서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 성령님이 깨닫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 맞다.’ 하고 감탄할 때가 올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빌립보서 2장 12절을 오해합니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는 말씀을 가지고 많은 성도들이 구원을 내가 이루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바로 ‘그의 긍휼사심을 좇아’ 라는 구절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긍휼) 때문에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면 빌립보서 2장 12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거듭남 또는 중생이라 하지요. 새 생명은 자라나야 합니다. 아기가 모유와 이유식으로 차츰 자라듯이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끊임없이 성장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길입니다.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많은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반드시 결산할 날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심판으로, 믿는 자는 상급으로 결산을 보아야 하지요, 심판주인 주님 앞에서. 우리는 빌립보서 2장 12절을 그리스인이 받을 상급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복음을 좇지 않고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과 그들이 주장하는 행위구원에 현혹되어 자기의 어떤 행위로 구원을 얻겠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다른 복음을 좇는 자들입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이라고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도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상투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믿어 천국가겠어?” 어떻게 들으면 굉장히 믿음이 있는 자의 질타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질타 속에는 사탄의 무서운 흉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니까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은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걸5:4)” 라고 한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자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행위 구원을 주장하면 교회가 부흥할까요? 교회 부흥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를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히 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고 하거늘(행2:37).”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행위 구원을 주장할수록 성도들의 지침 현상은 가중되어갈 뿐입니다. 성도들은 진정 죄사함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의 중압감에 짓눌려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갖거나 끝내는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복음이 분명하여야 하고 성도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율법(행위)의 짐을 지울 것인가 아니면 바른 복음으로 죄의 짐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갖도록 할 것인가는 선택입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선택한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 지도자는 마태복음 7장의 거짓 선지자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2-23)”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저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시나요? 저들은 애초부터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있어서의 ‘주’는 ‘다른 예수’입니다. 저들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다른 영’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의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은 믿음은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나는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주요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고.


 성도 여러분, 나는 나의 의로운 행위가 구원을 받는데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전도한 것이 얼마인데, 헌금을 얼마나 드렸는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많은 은사를 체험했는데 내가 구원을 못 받았을라고… 말도 안 되지 내가 천국 못 가면 누가 가나” 성도님은 조용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 7장의 거짓 선지자와 내가 무엇이 다름니까? 꼭 같지 않습니까? 오랜 신앙생활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나의 구원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과 헌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원 받은 자가 그 은혜에 감격하여 몸과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 드려 나의 구원자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돌아보며 열방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드림(헌신)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드림은 다 하나님 앞에서 나에게 되돌아올 상급으로 하나님의 곳간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찬물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그 상급을 내가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함께 우리는 모두 지금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라고 하시는 주님의 선포 앞에서, 또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하시는 말씀 앞에서 내가 나의 구원자가 되었던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와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허상입니다. 지금껏 좇아온 다른 복음을 버리고 이제 성경에서 밝히 말하는 바른 복음으로 돌아와 구원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2) 성도님은 어떤 죄를 큰 죄라 생각하나요? 그리고 큰 죄 지으면 받은 구원도 잃어버리나    요?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저가 앞서 쓴 글 ‘복음의 능력’에서 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정확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먼 것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다르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기에 나의 생각으로 죄를 정의하려 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1: 28-32)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죄의 경중(輕重)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유무(有無)만 있을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죄의 대가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이 죄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그 죄의 대가를 다 지불하시고 나를 의롭다 칭하여 주시고 나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큰 죄라고 여기는 죄를 지었더라도 한번 받은 구원은 그 죄로 말미암아 취소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만약 받은 구원이 취소된다고 믿는다면 이는 바른 복음에 근거하지 않은 다른 복음이요 사탄이 교묘히 속인 위장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며 성경에서 보장하는 믿음이 아니므로 구원 받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3) 날마다 짓는 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가나요? 그리고 앞으로 지을지도 모르는 죄는 어떻   게 해결하나요?

 

 이 물음에 많은 분들이 ‘날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 라고 응답하였으며 앞으로 지을지도 모르는 죄에 대하여는 모르겠다고 답한 분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 지도자는 날마다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하면서 자기 교인들을 닦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어떠했을까요? 회개의 중압감 때문에 잠자고 눈뜨기가 두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회개를 과소평가하거나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한 온전한 속죄, 영원한 속죄를 믿지 않는 잘못된 복음에 관하여 지적하고자 합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다른 복음에 기초를 둔 믿음이라면 이 역시 구원 받지 못할 믿음입니다. 성경은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2)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10:17) /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는니라(히10:18).” 


 우리가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원의 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가게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을지도 모르는 죄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용서해 놓았습니다. 궁극적으로 따져들어가 보면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긍휼)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자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예수님의 온전한 속죄에 관하여 말하고 난 연후에 12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징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다고 지옥가는 것은 아니지만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불편케 만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에게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삶이 고달파지고 행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상급이 없습니다.  


 이 외에도 나의 믿음이 바른 복음에 뿌리내리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복음에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줄이기로 합니다. 다만 저의 글 ‘교회는 진정 자살을 방지할 대안이 있는가’ 라는 글에서 자살의 성경적 정의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꺾고 하나님의 기준에 나의 생각을 맞추지 못한다면 나의 믿음도 잘못된 믿음임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4. 이 글을 맺으며


 참 저는 행복한 족속인가 봅니다. 아마도 너무 못나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많이 받는가 봅니다. 자식도 키워보면 무언가 모자라고 못난 자식에게 연민(憐憫)이 많이 가거든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여 바른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데 웬 은혜로 바른 복음을 깨달아 구원 받게 되었는지,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여라”


 저는 만남의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지뢰밭 같은 세상에 좋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서 안전하게 신앙생활 잘 하여온 것 너무나 감사하고 때마다 좋은 믿음의 멘토를 만나서 더 깊은 신앙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분외의 복인 것 같습니다.


 저의 집 부근에 한 교회가 있는데 저가 자주 가서 말씀을 듣습니다. 이 교회는 정말 복음이 분명합니다. 들을 때마다 막힌 것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정말 목사님의 분명한 복음, 참된 복음의 말씀은 이 시대의 등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복음이 희석(稀釋)되고 세속화되는 이 시대에 새벽을 깨우는 선견자가 되고자 하는 목사님을 존경하면서 저의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