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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공유하라

묵상 2012. 5. 23. 17:55 |

 어제 한 일간지를 보다가 참 마음이 흐뭇했다. 우리나라 한 대기업의 등기임원 평균 연봉이 100억원을 넘어섰다는 기사다. 이날은 또한 2011-2 유럽 챔피언십에서 첼시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으로 안방이 떠들썩한 밤이기도 하였다. 나는 첼시가 그라운드를 누빌 때면 꼭 대한민국이 세계를 누비고 있는 환상에 젖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수들의 가슴에 새겨진 낯익은 로고 때문이다. 한 기업이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며 우선 그 기업에 찬사를 보낸다. 세계적인 두뇌들을 스카웃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을 것이며 연구개발과 생산, 판매를 위하여 밤을 새워야 했던 임원, 근로자들의 노고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CEO와 임원 그리고 근로자들의 진정성이 곧 최고의 경쟁력이요 최고의 브랜드임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어 이 한 밤이 마냥 즐거운 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자는 별로 많지 않다. 나도 최근에야 모 일간지 기사를 통해 알았으니까. 기부금이 우리 돈으로 8000억원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건립기금 600억원을 선뜻 기부하고도 마냥 부끄러워하는 이분의 모습에서 “어린(어리석은) 백성이 니르고져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자가 많이 있는지라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라” 하신 세종대왕의 애민(愛民) 정신을 보는 듯했다. 나는 이분의 다음 말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내가 기업인이기에 돈 버는 데는 남 다른 재주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돈을 더 벌면 재벌밖에 더 되겠습니까?” 이 말을 들어보면 이분은 분명 재벌은 아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최고의 멋쟁이로 느껴진다. 멋이 무엇인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만 쓰지 않고 남과 더불어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이렇게 멋지게 한번 살고 싶지 않은가?

 

 나는 재벌을 맹목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나는 이번의 기사를 통하여 한 재벌기업의 임원연봉 1년치가 2조원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조원이면 천문학적 금액이다. 재벌이 임원연봉 1년치만 열악한 대학의 기초 과학 연구에 기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인재를 배출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철의 왕국 포항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흥해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영일만의 바닷가 한적한 야산 한 자락 끝에 자리한 한동 대학교, 이 대학에는 정말 많은 석학들이 와 있다. 돈으로 따지면 연봉이 최소 백억은 다 넘는 분들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오로지 사명 하나로 왔다. 돈의 위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돌고 도는 것이 돈이지만 돈이 사람을 돌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초연해진 사람이 있다. 나는 한동대학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이분들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연구하던 과학자들이다. 이분들이 한동대학의 설립목적을 알고 이 대학에 동참했던 것이다.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 대학의 총장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 바로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 학교는 학교 운영의 상당부분을 이 대학을 졸업한 동문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뭉클하였다. 정신은 정신을 낳고 인재는 인재를 낳는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가? 이제는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따져 보아야 할 때다. 하잘 것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며 바둥거리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부부가 싸우다 싸우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한마디 내뱉는 말, “그래, 너 잘났다.” 우리는 도처에서 서로 잘난 것 때문에 싸운다. 수탉 두 마리가 암탉을 사이에 두고 왜 싸우는가? 내 잘났다고 싸우는 게 아닌가? 인간 사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돈으로 경쟁하고 자리로 경쟁하고 미모로 경쟁하고 하다 보니 싸움할 일만 남는다.

 

 대학 입시에 논술이 등장하고 난 이후 우리나라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한 권 있다. 그게 바로⟨논리야 놀자⟩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으로 많은 학생들에게 논술 지도를 해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는 무엇인가? 흑백논리의 오류이다.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진 자는 내편이 아니면 모두 나에게는 적이다. 내가 선이면 상대는 악이기에 뭉개 버려야 하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기에 공감이 없고 공존이 없다. 가정에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그렇고 회사에서는 상관과 부하 사이가 그렇다. 학교는 어떤가? 내 자식이 최고니까 내 자식을 훈계하면 안 된다. 교사는 교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지식을 파는 자일뿐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교단생활 삼십삼 년 동안 참 많이도 매질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잊지 못한다. 자신이 스스로 깍지 못하는 제 머리를 내가 깎아 주었으니까.

 

 요사이 부모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신세대부모라 부르면서 편을 가른다. 그러나 부모의 개념 속에는 신세대 구세대가 없다. 왜냐하면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기 때문이다. 소위 자신들이 신세대라 스스로 일컫는 자들은 농사법을 모른다. 그들이 언제 밭에 나가 씨를 뿌려 본 적이 있는가? 내 자식 무서운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거든 오늘 당장 주말 농장을 한 밭떼기 마련해 보라 권고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밭에 씨 뿌리고 기다려 보라. 씨 뿌린 밭에 무엇이 함께 나는가를 보라. 내가 뿌리지도 않은 잡초씨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잡초는 새싹보다 훨씬 더 많다. 그 잡초가 나중에 곡식의 새싹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감아 올려서 온통 잡초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자식 농사도 매 한가지다. 고운 자식일수록 더 엄하게 키워야 한다. 여기서 엄하게란 말은 ‘절제 있게’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제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겸손을 배워야 한다. 겸손을 가르치는 최고의 스승은 자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명이 긴 나무는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일천오백 년 된 은행나무란다. 나무박사의 말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이상은 살지 못한다. 삶이 그렇고 앎이 그러하다. CEO를 넘어 재벌을 꿈꾸는 젊은이여, 꿈을 꾸며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꿈을 꼭 이루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음 말을 마음에 새기며 자신에게 되물어보기를 바란다, “재벌 되고 난 다음에는 무엇 할래? 그 돈으로”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영원은 안 된다. 영원은 결코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그 많은 돈 움켜쥐고 놓으려 하지 않는 어른은 마치 양 손에 과자를 잔뜩 쥐고도 더 달라고 때 쓰는 어린애 같다고나 할까? 어른들이여 제발 철 좀 들게. 철들자 죽는다더니 일찍이나 철들면 할 일 좀 하고 가지. 그러면 돈 없으면 할 일도 없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나 같이 돈이 없어도 글재주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보자. 찾아보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 있는 것으로 나누면 된다. 이것이 인생을 공유하는 것이다.

 

 요사이 재능 나누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홈스쿨에서는 여러 가정의 부모들이 자기의 전공과 재능을 살려 학생들의 훌륭한 교사가 되고 있다. 문제는 내 것을 내놓으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 것을 공개하면 경쟁에서 뒤진다는 생각이 우리를 늘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놓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것이다. 요사이 취업을 앞둔 젊은이에게 중압감을 주는 말이 무엇인가? 스팩이란 말이다. 그래서 스팩을 쌓기 위하여 학원에 다니거나 해외연수를 다녀오기도 한다. 그 흔한 자격증 몇 개쯤은 기본으로 따 두어야 면접시험에서 낙방하지 않을 테니까. 요사이는 남보다 차별화 된 그 무엇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다. 블루오션 이론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차별화된 전략이다. 인생의 성공조건에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그래서 이것을 무시하지 않는다. 물구나무서서 세상 바라보기는 생각의 틀을 바꾸라든지 고정관념을 깨라든지 하는 발상의 전환을 위한 한 교육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한 연후에 그 성공의 과일을 독식하지 말자는 말이다. 과식하면 설사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듯이 돈도 재능도 가질 만큼 가진 자들은 이제 자기가 취할 만큼 취하고 나누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하나도 아닌 두 아들을 세계적 명문대학에 나란히 교수가 되게 하는 영광을 얻은 가정을 소개한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다. 두 아들을 기른 아버지의 말씀 왈(曰) “50%는 너 자신을 위해 살고 나머지 50%는 나라와 세계를 위해 살아라” 이 친구들 이제는 정작 자기를 위해 사는 데는 자신의 열매의 오분의 일로도 족하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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