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보인다.

묵상 2013. 11. 25. 16:31 |

  창밖의 느티나뭇잎에 늦가을의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다. 나뭇잎들이 셋에 둘은 떨어지고 이제 그 하나만 남아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느티나뭇잎이 처음에는 노랗게 물들었다가 다음에는 붉게 변하고 떨어질 때쯤이면 검붉게 물들어 땅 위에 갈린다는 사실도 서울에 와서 살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만큼 나의 서울생활이 하루가 소중하고 고마운 날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무심히 보던 나뭇잎 하나도 유심히 보게 되고 관심 있게 보게 된 소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흔히 단풍하면 진홍색의 붉은 단풍을 연상한다. 그러나 단풍에는 노랗게 물드는 단풍들도 있다. 특히 한여름 내내 실실이 푸르던 수양버들이 늦가을에 노랗게 물들어 연못가에 가지를 드리우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내가 즐겨 찾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연못가 벤치에는 오늘도 선남선녀들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젊음이 있고 낭만이 넘쳐나는 대학 캠퍼스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달려가는 한 시니어가 젊음과 함께 오늘도 남이 보지 못하는 노란 단풍을 보너스로 보면서 사랑하면 보인다는 진리를 깨친 사람에게만 허여(許與)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조금 있다 중랑천으로 나가볼까 한다. 반가운 손님들의 귀환(歸還)을 보려 함이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손님이지만 내 마음의 한켠에는 무거움이 가시지 않는다. 양계농을 하는 농민들의 한숨소리 때문이다. 이들이 조류독감을 몰고오는 주범이라고 방송에서 연일 보도를 쏟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은 참 어려울 일, 세상은 고루 공평하지 않다. 그러기에 겨울에는 가정마다 닭 한 마리 더 먹기 운동을 벌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반가운 철새들의 귀환을 기다리고 그들의 찬란한 비상(飛翔)을 이 땅의 강과 호수 어디에서나 마음껏 볼 수 있기에 그러하다.



 오래 전의 추억이다. 어느 모진 겨울밤, 나는 퇴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날따라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 추위가 옷 속을 파고들어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오는 내 발걸음이 퍽이나 빨랐던 것 같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와서 집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는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오는 한 모자(母子)상이 나의 발걸음을 그 자리에 그대로 묶어 버렸다. 한 여인이 조그만 연탄화로를 놓고 지하철 입구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군밤을 구워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등 뒤에는 귀여운 한 아기가 매달려 연신 콧물을 흘리며 앙증스런 두 손으로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자기 코를 비벼대도 있지 않은가. 얼핏 보기에도 그 여인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스카프로 머리를 살짝 동였지만 얼굴이 희고 이목구비가 또렸했다. 나는 그 순간 그 여인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의 손은 저절로 나의 주머니 속을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내 지갑을 꺼내들고 그 여인의 군밤을 사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거기 군밤 구워 놓은 것 봉지채로 다 싸 주세요. 아기가 참 귀엽내요” 나는 그 여인이 팔려고 내어놓은 군밤 봉지들을 몽땅 다 샀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여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몽땅 다 사 주는 일뿐일 것이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 머릿속은 갑자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만한 인물이면 쉽게 살 수 있을 텐데, 그 길을 마다하고… 아! 그 엄마 고마워.‘”



 전에 내가 나의 블로그에 ‘아름다운 동행’이라 하여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 부부 한 쌍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현재 살고 있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이미 방송에 소개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방송을 보면서 참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부부라고 생각했다. 매일 방송되는 이야깃거리에는 정말 하잘것없는 것들도 많다. 어떤 프로는 시청자들의 비위에 맞추느라고 지식과 스펙을 고루 갖춘 이들을 패널로 등장시킨다. 프로를 짜는 입안자들은 구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건 정말 대 착각이다. 구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식과 스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세상은 왜 더 자꾸 꼬여만 가는가? 소위 지식인이란 작자가 자행하는 만행들을 그들은 보지 못하는가? 지식과 스펙만 그렇게 좋아한다면 그들은 진정 맘몬주의에 맹종하는 굴종적 노예근성의 발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라 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말잔치 뒤에 남는 것은 허무와 공허뿐이다. 이것들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로지 사랑만이 가능하게 할 뿐이다.



 배에는 단 네 사람만이 타고 있을 뿐이다. 선장과 세 사람의 인부. 선장은 한 쪽 팔이 없고 나머지 세 사람은 외국계 노동자 청년. 이 배는 오징어잡이 어선이다. 선장은 고향 울릉도를 떠나 오징어의 이동을 좇아 연중 동해에서 서남해안으로 이동 중이다. 그러니 고향으로 입항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번이나 될까? 바다에서의 생활이 태반이다. 바다에서의 일이야 소개할 필요도 없는 일, 한 마디로 극한 작업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해 주었던 일은 바로 선장의 진정성이다. 그에게 있어서 외국계 청년들은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이다. 남이 어떻게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는가? 사랑하면 보인다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그에게는 보이는 것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선장의 아내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 부부를 존경함을 금할 수 없었다. 배가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부두로 입항한다는 남편으로부터의 소식이 오면 아내는 불원천리(不遠千里) 남편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새벽이든 한밤이든 시외버스 터미널에 그녀는 서 있는 것이다. 남편을 만나기 위하여, 남편의 항구로 그녀는 가는 것이다. “선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선 새벽, 선창가에 서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입에서 하선(下船)하는 남편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의 말! 당신은 내 삻의 이유란 뜻이 아닐까(You mean everything to me)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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