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사회의 병리현상

 

 한국의 발전상은 가히 눈부실 정도다. 가난과 패배의식 속에서 절망의 날들을 지새우면서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나야만 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해방둥이인 나로서는 조국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는 나의 조국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과 딸들은 이제 더 이상 패배의식에 젖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이방나라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어 강좌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을 보며 참으로 크나큰 격세지감을 갖는다. 우리는 이제 당당하다. 우리는 오랜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지 않는가.


  그런데도 유독 이해할 수 없는 병리현상 중의 하나가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하루에 삼십오 명꼴로 죽는다. 그것도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자살 사이트가 횡행하고 젊은이의 자살을 미화하며 부추기는 글들이 버젓이 올라와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시절인 60년대는 참으로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격동의 시기였다. 아마 젊은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기에 참 어려웠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자취방에서 벗들과 함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주고받은 적이 많았지만 우리의 대화 속에서 자살을 소재나 주제로 다룬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내가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하는 삶에 대한 치열(熾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뭐 생명의 존엄성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때 그런 사치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몸으로 열심히 살면서 고민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풍요 속에서 빈곤의 갈등을 겪고 있다. 물질적 풍요, 문화적 풍요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적응(適應)과 안착(安着)을 갈구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이 사회에 연착륙(軟着陸)할 것인가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데에 고민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속도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그 시간의 속도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찍기도 전에 시간은 아득히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만다. 그러기에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무력해지고 절망하게 된다.


 근자에 우리는 신문 지상이나 방송 매체를 통하여 유명세를 타는 배우나 탤런트들이 자살하는 일들을 접하게 된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한국 기독교계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자살을 막을 것인가?


 

2.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은 있는가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대안은 수 없이 많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효과가 별로 없다는 데에 고민이 있다. 자살을 방지하고자 하는 기독교적 대안 중에 가장 많이 제시되는 안이 바로 이것이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 하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은 이것이 성경적이라 보고 있으며 자살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이라 보고 있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에 자살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곳은 없다. 성경에서 살인을 어떻게 보는가를 살펴보면서 자살에 관한 성경적 이해를 돕고자 한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말씀하시면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마15:19)’ 라고 규정하셨다. 이는 죄가 곧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며 행위에 근거하지 않음을 명백히 말씀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도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일3:15)’ 라고 말하고 있다. 이로 보건데 우리가 설령 행동으로 간음하지 않았고 행동으로 살인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간음한 자요 살인한 자로서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살인의 동기가 남을 미워함이라면 자살의 동기는 자기를 미워함이다. 야고보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라고 하였으니 남에 대한 미움이 증폭되면 살인을 낳고 나에 대한 미움이 증폭되면 절망에 이르고 결국 자신이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이 일어난다 할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는 나를 미워한 적이 없어.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 절망해 본 적이 없어’ 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있는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쉽게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일을 보고 내심 분개해 왔다. 그러나 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나는 나 자신 나를 미워한 적이 수없이 많았으며 나에게 절망한 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볼 때 나는 무수히 자살 죄를 지어왔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았더라도 자살하면 받았던 그 구원이 취소된다’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시면서 ‘다 이루었다(요19:30)’ 말씀하셨으니 이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완벽하게 씻어주시고 용서하셨다는 말씀이다. 또한 히브리서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2)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라고 말하고 있다. 이로 보아 한번 받은 구원이 그 후의 어떤 죄로 인하여도 취소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벽하고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성경 몇 구절에서 살펴보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12:31)’ 라고 말씀하시면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9:6)’ 하셨으니 주님은 나를 포함한 사람이 지은 모든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가 있으시다.


 이 모든 성경말씀을 종합해 보건데 주님의 십자가 죽음 다시 말해서 보혈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함이 명백하다. 따라서 자살 죄로 인하여 이미 받은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음도 명백하다. 왜냐하면 구원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이니 한번 생명으로 태어나면 그 생명은 취소될 수 없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새 생명을 받았으니 그 생명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믿음이요 비 복음적 독소라 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하여는 총신대학원 교수의 글이나 침례회 신학대학원 교수의 글에서도 이미 확인한 바 있고 구원관이 확실하고 바른 성경관을 갖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비 복음적인 말로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둘째로 상당수의 목회자들과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살에 관한 비 복음적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인 즉 구원받은 자들은 자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피조물인 인간에겐 자살할 권리가 없다. 자실하면 이는 하나님의 주재권에 도전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그 근거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든다. 나도 지난날 이러한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묵상해 보면 생명을 끊는 행위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범하는 불순종이 하나님의 주재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최초의 범죄인 아담의 불순종부터 하나님의 주재권에 도전한 행위였기에 그 대가로 인간에게 죽음이 오지 않았는가. 


 살인죄를 지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살인죄는 내가 남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이다. 내가 남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과연 내게 있는가? 내가 나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나에게 없다면 더더욱 내가 남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생명을 빼앗는 죄는 하나님의 주재권에 도전함으로 보지 않고 유독 나의 생명을 빼앗는 일만 하나님의 주재권에 도전하는 일로 본다면 이는 나와 남의 생명을 동일시하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사악한 죄성(罪性)의 발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나와 남을 가릴 것 없이 생명은 귀한 것이다. 따라서 살인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자살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리 없다. 


 셋째로 상당수의 목회자들과 일반 성도들이 가지는 자살에 관한 비 복음적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죄는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자살 죄는 회개할 기회가 없기에 구원받지 못한다’ 라고 하는 주장이다. 이에 관하여는 나의 글 ‘복음의 능력’에서 회개에 관하여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회개는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5:17)’ 라고 말씀하셨다. 이때의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구원의 주로 영접하여 영생 얻는 회개를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생명 얻는 회개(행11:18)’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요1:12). 그러기에 우리가 생활 속에서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잘못을 자복해야 한다.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라고 밝히고 있기에 회개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성령의 일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회개가 구원의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만약 회개해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자는 하나도 없다. 내 죄를 다 기억하는 자도 없고 기억하고 있다고 다 회개하는 자도 없으며 죄에 대한 관점과 기준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관점에서 보자. 만일 구원받은 신자가 삶 속에서 죄를 지었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면,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죽는 모든 신자는 다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이 되므로 아주 잘못된 주장이 된다. 평소 신앙생활을 잘 하던 신자가 치매에 걸리거나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한 경우 구원받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구원은 회개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롬10:9-10).


 따라서 어떤 사람이 절망 가운데서 고민하다가 비록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할지라도 그 자신이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나의 구원의 주’로 영접하고 믿음의 확신을 가진 자라면 자살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이미 받은 그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넷째로 자살에 관한 또 다른 비 복음적 주장을 살펴보면 ‘자살은 마귀로부터 끈임 없이 자살의 유혹을 받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한다.’ 라는 견해다. 자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유혹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의 범죄와 타락도 결국 마귀의 유혹에서 왔음을 창세기 3장 1절에서 분명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주장은 자살을 방지하는 복음적 대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의 산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3.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

 
 그렇다면 구원받은 기독교인이 자살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째는 기독교인에게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모든 소망을 둔다. 돈과 명예, 지식과 미모에 집착한다.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돈은 돌고 돌아 남에게 가 버릴 것이기에 그야말로 돈이다. 명예와 지위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지식도 지나면 낡아 쓸모가 없어진다. 더더욱 미모는 시간이 갈수록 추해진다. 늙은이가 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가? 자기의 늙어가는 추한 모습을 보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소망은 한시적이다. 영원하지 않다. 그러기에 필연적으로 허무요 절망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 저 본향에 소망을 둔다. 이것이 산 소망이다.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자신을 절망 속으로 송두리째 내던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 소망을 주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는 대안이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고 사명을 깨달은 후에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라고 말한 것을 보면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명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이 종착점이다.


 자살은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 앞에 망령된 행동을 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참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결산할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벌(永罰)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永生)으로,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상급으로 결산을 받아야 할 날이 있는 것이다. 그때 나의 주인 되신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는 칭찬을 받을 것을 소망하면서 그리스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지 않고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는 대안이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의 피조물이다. 그러기에 생명을 주신 자의 거룩한 뜻에 따라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날마다 일마다 감사와 찬송으로 당신의 거룩한 일을 성취하려 하면서 최선을 살아가야 할 뿐이다,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하며. 할렐루야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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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묵상 2011. 1. 15. 09:11 |
 

 겨울의 차가움이 목덜미 속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낯선 서울에서 겨울 맛을 톡톡이 보게 되나보다. 말없이 흘러가는 중양천은 오늘 밤도 철새들을 맞을 준비로 바쁘다. 발원지를 알 수 없는 이 강물은 백여리를 남쪽으로 돌고 돌아 한강 본류와 합쳐져서 서해 바다로 흘러든다. 중양천은 참 많은 것도 남쪽으로 실어 나른다. 인라인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 쉼 없이 페달을 밟아대는 사이클링 족, 다정한 연인들, 그리고 천리 밖을 서성대는 영원한 이방인인 나.

 

 내가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온 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내 주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이렇게 내가 변했을까 하고 스스로 놀라게 된다. 물론 환경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그건 별게 아니다. 사람은 환경적 동물 아닌가. 환경을 초월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기에 하루가 끝나면 고달픈 육체야 거저 침대 위에 얹고 쉬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내 영혼이다. 내 영혼의 상태가 어떤지 나는 자기 진단을 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은 편치 못하였다. 영혼의 쉼이 없이는 참된 쉼은 없다. 그러기에 주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짊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지 않았는가. 내 영혼이 진정 주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 환경이야 어떠하든 기쁨과 감격으로 하루를 맞을 수 있을 텐데 진정 내 영혼에 쉼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가만히 묵상해 보면 내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와 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임을 말씀하려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말씀하시려 한 비유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종종 이 부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둘째 아들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첫째와 둘째가 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른 탕자다.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에 탕자요 영과 육이 아울러 곤고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의 독백을 들어보자.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굶주려 죽는구나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아들의 고백은 이러하였지만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반응은 어떠한가?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 성경 구절 속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까지 나는 너무나 먼 길을 돌아온 탕자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까지 육십여 년이나 걸린 것이다. 육신으로는 나는 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또 세 자녀를 낳아 길러왔던 한 아버지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신분으로 살아보면서도 정작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지금 곰곰 생각해 본다.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마 육신의 정욕으로 인하여 나의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집착했지만 정작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세월이 물같이 흐르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 정리하는 시간이 가까워오니 나도 철이 드나보다. 자식들을 돌아보며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니 내 영안이 열리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측은히 여김’이다.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의 이야기다. 시골에 계시는 노부모님을 뵈려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집을 방문할 때면 늘상 어머니가 하시는 말, “얘야, 너거 아부지 너희들 온다고 일주일 전부터 매일 동구 밖 버스 정류장에 나가셨다.” 하신 말이 생각난다. 그럴 때면 매번 나는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 뭣땜에 그래요? 올 시간에 나가보면 되지 번거롭게” 하면 어머니는 “나도 모른다. 영감이 왜 그런지”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아들과 딸들이 측은히 여겨진다. 아들과 딸들이 사는 곳에 불쑥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을 아들과 딸들이 핀잔을 주겠지. 나는 요사이 인천과 부산에 떨어져 사는 아들과 딸에게 한 번씩 전화를 걸어본다. 아들과 딸의 답전은 매번 시큰둥하다. 그래도 자식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좋다. 언젠가 TV 광고에 이런 장면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재벌 그룹의 큰 사무실에서 한 젊은이가 열심히 제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데 옆의 동료가 와서 전하는 말, “박 대리, 로비에 나가 봐, 자네 아버지가 와 있어.” 전갈을 받은 젊은이가 헐레벌떡 로비로 나간다. 거기에는 머리가 반백이 된 노신사 한 분이 창밖을 내가보고 있다. “아버지, 이 시간에 어떻게 오셨어요, 집에 무슨 일이 있어요?” “예야, 일이 있어야만 오니? 너 얼굴 한번 보고 싶어 왔다. 얘, 아버지 간다.” 하고 밖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젊은이의 모습이 클로즙되면서 동구 밖에서 기다리던 나의 아버지가 눈에 선하다.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성경속의 하나님일 뿐이다. 왜 그럴까?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이 떡을 달라할 때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할 때 뱀을 주는 부모가 있겠느냐 세상의 악한 부모도 그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그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나의 하나님은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인식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내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고 언제나 나의 자식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듯이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일로 아버지를 만나기를 원하는 첫째는  왜 탕자인가? 그는 아버지의 속을 끓게 한 적도,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도,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적도 없었던 소위 모범생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 라는 아버지의 말을 깊이 묵상해 보면 첫째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진정 알지 못했기 때문에 탕자다.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전부이다. 아브라함은 자기 삶에 하나님이 전부이었기에 롯에게 선택권을 먼저 줄 수 있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13:9)” 하는 이 구절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 양떼를 치는 이들에게는 물과 푸른 목초지는 가히 삶의 전부나 다름없다. 척박하고 메마른 가나안 땅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빼고는 양떼를 칠 만한 적절한 곳은 없다.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서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곳이 얼마나 비옥하고 풍요한 땅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롯의 양떼들도 본래는 다 아브라함의 재산이다. 애굽 왕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이다. 그러기에 마땅히 아브라함이 먼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조카 롯에게 양보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요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예배하는 교회에서 존경하는 목사님으로부터 이 설교를 들었다. 아브라함이 피자 네 쪽 중에서 한 쪽을 때내어 롯에게 준 것이 아니라 전부를 포기하고 전부를 선택했다는 말씀을 듣고 나의 영안이 번쩍 열림을 깨달았다. 그렇다. 하나님은 내 삶의 전부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면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동서남북 전부를 얻는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당신을 언제 어디서나 내 삶의 전부로 환영합니다.

 oh Lord, anytime anywhere welcome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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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메랑, 이것은 호주 서부 및 중앙부의 원주민이 사냥에 사용하던 무기의 하나로 마치 활등처럼 굽은 나무의 막대기인데, 목표물을 향하여 던지면 회전하면서 날아가고 만약 그것에 맞지 않으면 되돌아온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 글에 인용하여 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본래는 긍정적으로 쓰인 만큼 나는 이것을 긍정적 의미로 내 경우에 적용해 보려 한다.

 

 본래 이가 튼튼하지 못하여 고생을 많이 하여 왔던 나였기에 식후의 주전부리는 거의 하여 오지 않던 내가 그날따라 무엇이 먹고 싶어졌는지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견과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하나 입에 넣고 한 번 힘차게 깨물어 보았다, 그런데 얼마나 단단하였던지 꼭 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냉동실에 넣어 두었으니 돌일 수밖에. 나는 먹기를 포기하고 옆에 놓아두고 조금 녹기를 기다렸다. 견과 하나가 나의 인내를 시험해 보려는 듯 입 안에서 자꾸 군침이 돌았다. 나는 조급해진 마음에 옆에 놓아두었던 견과를 집어 입 안에 넣고 두 번째 시도를 해 보았다. 역시 돌이었다. 나는 그것을 깨물어 앞니로 재껴야겠다고 생각하고 힘껏 앞으로 재끼는 순간 무엇이 ‘우직’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나는 앞니 하나가 부러진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더니 후회막심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


 손바닥에 얹혀있는 부러진 반쪽 이를 멍하니 내려다보면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 낯선 서울 바닥에서 어느 치과로 가야 할지, 비용은 또 얼마나 들지, 정말 막막하였다. 치과는 아무 곳이나 가는 것이 아님은 상식이다. 이튿날 주일 아침에 인근에 있는 교회에서 1부 예배를 드리고 다급한 마음에 집 근처 치과에 가 보았더니 X-ray 촬영 후 담당 의사가 하는 말, “선생님은 치근이 아주 좋습니다. 임플란트 하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였다. 내 치근이 약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터요 비용도 만만찮다는 것을 아는 터라 나는 발걸음도 무겁게 치과 문을 밀치고 나와 버렸다.


 정말 멍한 주일 오후였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너에게 제자들이 지 않느냐는 성령의 감동이 들려왔다. 감동과 동시에 제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물론 부산에서 치과개업하고 있는 제자다. 저녁 9시가 되었을까, 나는 제자에게 전화를 연결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이때부터 일사천리! 하나님은 나의 마음속의 걱정을 다 아시고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하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다.

 

 그 제자가 그 밤에 서울로 자기 동기에게 연락하고 그 동기는 또 치과의사인 자기 동기를 찾아 그 밤에 나에게 전화하는 일이 일어났으니, “선생님, 88년에 졸업한 24기 졸업생 OO입니다. 선생님께서 서울로 오셨다구요, 저는 내과의사라 안 되고 내 동기 중에 치과의사하는 XX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기억나시죠? 그 친구는 밤에는 휴대폰을 꺼 놓기 때문에 저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일 아침에 그 친구로부터 연락 올 것입니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튿날 아침 9시경 제자인 치과의사로부터 다정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 후 나는 제자의 치과에서 꼭 한 달 간 치료를 받았다. 물론 임플란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부러진 이의 그루터기를 살려서 그 위에 덮씌우는 어려운 시술을 받았다.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지, ‘나에게 이런 제자가 있었다니, 나는 정말 행복한 족속이구나’ 생각하면서 제자가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제자에게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얘, 너 나에게 수업 받았나?” 하고 말이다. 물론 삼 년 동안 한 번은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전 학년 서른여섯 학급에 국어 선생 열, 한 학년에 세 명씩 담당이다. 현대문과 고전 작문 문법을 나누어 가르친다. 나는 물론 삼 학년을 거의 전담했다. 그러나 주로 문과를 맡았기 때문에 이과인 학생과는 만남이 적었다. 그런데도 22년 전에 졸업한 이들이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만히 지난 한 달을 되돌아 생각해 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만 나올 뿐이다. 이 작고 미련한 나를 기억하여 주시는 나의 하나님이 고마울 뿐이다. 나는 지난 삼십삼 년 동안 한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쳐왔다.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밤을 새워 교재를 연구하고 목젖이 내려앉을 정도로 열강을 하여왔다. 때로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 제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내 인생의 노른자위를 학교에서 다 보냈다. 그것이 22년 만에 아름다운 보상의  선물로 나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이름하여 ‘기억하여 줌’의 부메랑으로.


 하나님이 나를 왜 기억하고 계실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도 많다. 내가 세상일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늘 그래왔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제자들과 만나 상담한 연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복음의 소식을 전한 이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복음보다 귀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복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자신에게 되물어보곤 한다. “나 같은 자도 하나님이 기억하실까?” 하고 말이다. “나 같은 자는 기억하시지 않을 거야.” 하면서 절망하고 좌절하면서 쉽사리 포기하고 만다.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왕상 17장을 읽다가 갑자기 사르밧 과부를 주목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배역한 패역한 아합 왕 시대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참 사람들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불러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는가? 그리고 그 기막힌 명령을 당신의 종으로 하여금 하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의 믿음을 미리 아시고 그녀를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녀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증거가 있으니 왕상 17장 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결국 하나님은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핍박한 땅에서 그녀의 생명을 구원하고 그녀 아들의 생명까지 덤으로 구원해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자신을 되돌아보며 절망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보지 않고 사람의 관점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힘 있는 자의 요구나 소원을 쉽사리 들어준다. 세상에서는 재력, 권력, 가문, 학벌, 심지어 외모까지도 다른 이와 비교하여 우위에 있을 때 그만큼 대우를 받는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신다. 사르밧 과부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정말 힘없는 작은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큰 자다. 그녀는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자라 할 수 있다.


 사르밧 과부는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패역한 조국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께 얼마나 중보기도를 했을까, 그 신앙의 깊이와 순수성의 열정이, 아득한 시∙ 공간을 넘어 지금 내 가슴에 와 닿음을 느끼게 된다. 그 믿음의 깊이와 간절함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을 순종으로 이끌어 낸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 과연 그러하다.


 폐일언(蔽一言)하고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하나님이 어떤 자를 기억하시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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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육십분의 일

묵상 2010. 2. 12. 23:57 |
 

 나는 2월 7일 주일오후 예배를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사역하는 허OO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간증이 하루 뒤 나에게 일어난 한 사건과 연관되어 나를 일깨우는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로 들려옴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허 선교사의 사역과 간증을 잠깐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허 선교사의 신앙 간증 

 나는 27세의 청년 시절에 교회에서 어느 선교사의 선교 보고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보고를 진지하게 듣고 있던 중 갑자기 그 선교사님은 청중들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전혀 엉뚱한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내 인생의 백 육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분은 손을 드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내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면서 누가 손을 드나 다들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하였지 정작 손을 드는 자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생애에 육 개월 정도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오른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이게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서 2년간 단기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끝내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지금 나는 18년째 아라비아 반도의 한가운데 위치한 시나이 광야에서 베두인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나이 광야는 모세가 40년간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한 곳입니다. 베두인 족속은 3500년 동안 이 황무지 같은 불모의 사막에서 양떼를 따라 유랑하며 알라신을 섬기는 이슬람 종족 중의 한 소수민족입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자들이 아직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체구가 비교적 큰 나는 지금 콧수염을 기르기까지 해서 타반을 쓰고 그들과 섞여있기만 하면 영락없는 베두인입니다. 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덕에 그 많던 머리 숯이 다 빠지고 이제는 반 대머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꼭 알맞은 심부름을 시킵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잘 마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베두인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심부름을 시켰거든요. 우리 모두 심부름 잘 합시다.

 

 나는 허 선교사의 신앙 간증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이 감동과 하루 뒤 나에게 일어난 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나는 지금 말하려 하는 것이다.

 

 2월 8일 오후 1시 30분에 나는 전라북도 익산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해 고속도로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도 짙게 끼었다. 나와 아내, 목사님 한 분 이렇게 세 사람이 동행하여 예배의 처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가 모는 승합차가 남강 휴게소를 지나고 얼마를 더 달렸을까, 갑자기 우리 차의 측면을 들이받는 ‘꽝’하는 굉음과 함께 우리 차는 심히 좌우로 흔들렸고 나는 졸고 있던 조수석에서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우리 차를 바짝 뒤따라오던 승용차 한 대가 졸음운전으로 우리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때 우리 차는 1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차는 십여 초 만에 정말 기적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충돌의 충격으로 만약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았다면 우리 셋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아도 소름이 끼친다. 아내가 핸들을 놓치지 않은 건 전적으로 하나님이 핸들을 잡아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그 순간을 분명히 목격하였으니 나는 그 사건의 생생한 증언자다.

 

 나는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본다. 익산에서 예배를 마치고 함께 귀가하던 동료 몇 명이 예배 시간에 들은 십일조에 관한 일을 차 안에서 주고받으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온전한 십일조에 관한 논쟁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나는 마음이 차츰 불쾌해지면서 심사가 뒤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화를 벌컥 내면서 ‘제발 그만들 두어’ 하면서 소리를 꽥 질러 버렸다. 장내는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분위기가 다운되기 시작했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말씀을 주제로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가는 자들에게 나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이번 주의 사고와 지난주의 차 안에서의 화냄이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인을 계속 기다려 왔다. 그런데 사고 이틀 후 새벽에 하나님이 나에게 무서운 책망을 하셨다. “너는 내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느니라” 하고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명기 32장 51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모세가 패역한 자기 백성 앞에서 반석을 두 번 치면서 화를 낸 행위가 그렇게 큰 죄였던가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었는데 이제야 시원히 풀리는 것 같다. “왜 너를 살려두었는지 너는 아는가? 나의 심부름 잘 하라고 너를 살려 놓았다“ 하는 하나님 당신의 책망이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하다. 아버지 하나님, 내가 당신 앞에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의 사랑으로 진노를 거두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를 용서하옵소서. 신실한 하나님의 사역자요 나의 동반자인 사랑하는 아내와 우리 차에 함께 동승했던 강 목사님 덕분에 나는 덤으로 살아났다. 아브라함 때문에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며 두 사람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보낸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심부름 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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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 찾는 사람들

묵상 2009. 9. 16. 13:51 |
 

 나는 고향이 둘이다. 하나는 아버지의 고향이고 하나는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처가살이를 했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왜 아버지는 고향을 등졌을까? 아버지가 등진 고향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곳을 찾기만 하면 어릴 적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먼 훗날 아버지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이 고향의 양지바른 산자락 밑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두메산골이다. 그곳 산자락 밑에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살고 있다. 같은 성씨가 대를 이어 살아가는 씨족마을이기에 옆집에서 기침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다. 논보다는 밭이 휠씬 많은 마을, 낮닭이 한가하게 울고 삽살개가 마을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산꿩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예부터 어른들은 이 마을이 입구는 좁고 속은 넓어서 꼭 단지 같다 했다. 그래서 단지마을이라 하던가. 봄철이면 여기저기 밭두렁에는 자운영 보랏빛 꽃이 피고 피기가 올라온다. 그러면 아이들이 피기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설, 추석이면 어김없이 일 년에 꼭 두 번씩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오곤 하였다. 우리 집이 예수를 믿었기에 아버지는 고향을 찾아올 수 없었다. 문중에서는 아버지를 아예 죄인처럼 취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집안의 장남이 예수 믿는 아내에게 미쳐서 조상 봉제사를 팽개치고 고향을 등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사실 나의 아버지는 장남이 아니었다. 육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장남이 남의 집 양자로 가 버리자 졸지에 장남의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를 두 번이나 갔다 오셨다. 단지 살기 위하여. 한 번은 남만주로 또 한 번은 북만주로, 솔가(率家)하여 이주하지 않았던 것은 그놈의 추위 때문이라 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견디겠는데 추위는 안 되겠더라 하시면서 그때 일을 들려주실 때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巴人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강의할 때면 의례히 나의 아버지의 간도(間島)의 삶을 나의 삶으로 치환(置換)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곤 하였다. 그러면서 무슨 대단한 영웅이나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의 경험을 나의 사치한 대리경험으로 바꾸어 오만을 떨었던 일을 나는 지금 철저히 회개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과 아버지의 고향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추석이면 언제나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곤 했다. 점심을 일찌감치 먹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산마루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 산은 먹을 것이 많다. 다래, 머루가 산 속에는 지천으로 많다. 빨갛게 익은 포구를 따 주는 어머니의 손길은 또 얼마나 따스한지, 가을산은 간식(間食)이 풍부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거저 따 먹으면 된다. 계곡 아래로는 솔바람이 불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걸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녘이면 어머니와 나는 산마루에 이른다. 산 아래에 펼쳐진 고향 마을은 언제나 정답다.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오르고 초동(樵童)들이 나뭇짐을 지고 사립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내가 태어난 고향과 아버지의 고향을 찾는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나의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기에 더욱 자주 찾는다.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 변했다. 변소와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에 태어나서 나는 결혼도 했었지만 요사이는 화장실과 처가는 가까울수록 좋다 하니 그만하면 세상은 참 많이 변하기도 했다 싶다.

 

 고향은 언제나 좋다. 몸이 편해서 좋고 마음이 푸근해서 좋다. 이제는 마을도 변하고 길도 변하고 논두렁 밭두렁도 달라졌다. 그러나 산은 예전 그대로다. 마을 뒤 산자락 끝 내가 뒹굴던 묏등이 그대로이고 왕소나무도 그대로이다. 마을 뒤 못에 올라가 둑길을 걸어 본다. 멀리 두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린 시절의 고향동무는 많이들 대처(大處)로 나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벗이 몇 안 된다. 아, 참으로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구나.

 

 나는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을 참 좋아한다. 거기에는 본향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내 영혼에 안식을 주는 구절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인생에게 허상의 고향과 참 본향의 고향이 있음을 분명히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도 늙으면 고향을 찾는다. 이것은 아마 고향에서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고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물에게는 대체로 회귀본능(回歸本能)이 있다. 이것을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고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종내에는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찾는 고향은 허상이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에 있다.

 

 성경은 인간을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주 앞에서는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 라고 하였으니 영락없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하였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오른 자들은 모두 자신을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하였다.

 

 해 아래서 새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속히 지나간다. 하나님이 나에게 네 육신의 장막을 걷어라 명하시면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미련 없이 나의 장막을 걷어야 한다. 나의 본향은 하늘에 있다. 이 세상이 목적지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본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성령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하는 말씀 앞에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해 본다. “주여, 오늘도 겸손과 온유로 당신을 닮아가게 하소서. 나의 본향은 하늘에 있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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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

묵상 2009. 8. 26. 15:14 |
 

 흐르는 강물 위로 잠길 듯 말 듯 삐죽 솟아오른 주먹 바위 끝에 외다리로 서서 목을 빼고 물속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황새 한 마리가 마냥 시간을 붙들어 매고 있다. 팔월 말의 저녁 햇살이 아직도 따갑기만 한데 진부에서 발원한 평창강은 오늘도 유유히 세월이란 화물을 부지런히 바다로 실어가고 있다. 강물 위로 갑자기 한 줌의 금가루가 뿌려진다. 눈이 부시다. 구름에 가리었던 해가 얼굴을 내밀면서 산 아래로 잠겨든다. 강원도는 언제나 찾아와도 정겹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또한 바다가 있어 좋다.

 

 내가 지금 찾아온 이곳 평창은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스키장이 많고 겨울은 외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현지인들 말로는 전국에서 펜션이 가장 많단다. 동계 올림픽을 대비해 지어놓았지만 올림픽 유치가 무산되면서 빚만 늘었다고 한숨들이 보통이 아니다. 평창에 바위 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외지인인 나에게 자연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돌의 품평회에 초대받는 행운을 선사한 지인에게 감사한다. 나는 바위 공원에 전시된 자연석들을 둘러보며 태고의 신비를 맛본다. 참으로 하나님의 창조함이 위대하다. 금강산 만물상을 축소한 듯한 갖가지 형상의 만물바위,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모자바위, 그 외 수 없이 많은 바위들이 떼를 이루어 한 자리에 누워 있는 모습이 퍽 인상 깊다.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 도회지 같으면 열대야로 밤잠을 설칠 시간인데도 여기 평창은 몸이 땀으로 끈적거리는 느낌이 없이 쾌적하다. 오염되지 않은 일급수의 에메랄드빛 강물과 싱그러운 숲이 군무를 이루어 풍부한 오존을 공급하는 탓인지 몸이 가뿐해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나는 오늘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천리 길을 허우적거리며 달려왔다. 밤을 새워 예배를 드리는 우리 일행들에게는 이에서 더한 축복은 없다. 밤하늘의 별자리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대나무 장대에 조래기를 매어 가지고 감 따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별을 하나 따서 나의 방에 걸어보고 싶다.

 

 주여, 이 밤도 당신을 찬송하며 한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 한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고 한 영혼을 찾아가게 하소서. 오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이 땅에서 나를 내려놓고 내가 먼저 손 내밀게 하소서. 내가 먼저 나의 몫을 포기하게 하소서. 욕심과 자만으로 오염된 이 땅에서 나로 하여 가족과 이웃이 편안하게 하소서. 존경과 배려로 섬기며 살게 하소서. 이 땅이 옥토(沃土) 되는 토양을 만드는데 나로 하여 한 줌의 부토(腐土)가 되게 하소서. 예배는 비움이요 섬김의 훈련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배설하는 천국 예배에 나로 시중들게 하소서. 나의 가족을, 나의 이웃을 그리고 열방의 뭇 영혼들을 당신이 초대할 때 나도 거기 있게 하소서. 

 

 주여, 당신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십니다. 나로 한 영혼을 깨우는 파수꾼이 되게 하소서.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도 많습니다. 개중에 어떤 이는 너무 잘나서 현란(絢爛)한 필치와 난삽(難澁)한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영혼을 도둑질하는 악역을 맡은 자도 있지만 나로 영혼을 미혹케 하는데 쓰임 받지 않고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데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배우는 감독이 맡겨준 배역에만 충실할 뿐이니 악역을 맡기시지 않은 감독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달리는 열차는 종착역이 있고 항해하는 배는 귀항지가 있다. 세상일에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끝없이 집착하고 끝없이 거머쥐려 한다. 시기와 질투는 분노를 낳고 분노는 다시 분노로 증폭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무엇으로 끊어야 할지? 대안은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주님, 진리 안에서 참자유룰 주시는 당신만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인생이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 난 여기 파도 흉흉한 육지를 항행한다” 중국의 시인 지센의 ‘배’란 시의 한 구절이다. 수많은 시를 읽고 또 교단에서 그것을 가르쳐 왔지만 이보다 더 인생을 깊이 함축하고 있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인생을 얼마나 역설적으로 묘사해 놓았는가. 배가 바다를 항해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 중에 해양대학 항해학과 출신이 있다, 그는 반평생 배를 탔다. 그것도 그리스 선적의 유조선을 탔다. 평상시에는 선장인 자기가 키를 잡는 일이 거의 없다 하였다. 선장이 키를 잡을 때는 가장 위험한 때 즉, 태풍이 불거나 갑자기 돌풍이 불어 수십만 톤이나 되는 그 거선(巨船)이 가랑잎처럼 파도 위에 들어 얹혔을 때라고 했다. 한 순간의 판단을 잘못하면 배와 함께 모든 승무원은 물귀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만만한가? 이 시인은 인생이 세상을 헤쳐 가는 일이 배의 항해보다 더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을 배의 항해에 유추한 것이다.

 

 우리의 선장(船長)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길이며 생명이시니 나의 일생을 온전히 그분께 다 맡겨 버려도 좋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하였으니 나는 나의 무거운 짐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이 주시는 평강과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기만 하면 된다. 인생은 남의 불행에 함께 하며 울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 그것이 인생의 한계(限界)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 냉엄한 사실을 참으로 많이 경험해 왔다.

 

 나의 문제를 참으로 시원히 해결해 줄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를 지어셨기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전능하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신문의 사회면에  흉악범이 경찰에 쫒기다가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숨어드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때 자기를 찾아온 아들을 어머니가 신고한 경우를 우리는 거의 찾아보지 못한다. 이를 두고 그 어머니를 비난하는 세상 사람들도 별로 없다. 왜일까? 어머니의 사랑이 그 자식의 죄를 덮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죄로 고민하고 절망하며 끝없이 좌절하는가? 숨을 곳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가? 예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기만 하면 소망이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돌아오기를 주저할 때 나보다 먼저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돌아오는 한 영혼을 사랑하며 두 팔로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자기의 피로 나의 죄를 덮어 주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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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아 주시는 하나님

묵상 2009. 5. 24. 22:37 |
 

 한 달 전 저녁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김창진입니다. 1977년에 저희들이 2학년 D반이었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들을 담임해 주셨잖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철없는 저희들을 위하여 애쓰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희들이 이번에 선생님을 모시고 실로 32년 만에 반창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며칠 후에 선생님 댁을 방문하겠습니다. 멀리 뉴욕에 있는 봉집이도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찾아뵐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내가 브니엘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33년 동안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했던 학생들이라면 바로 이 2학년 D반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브니엘 학교에 근무한 지 4년째 되는 해였고 한 학급당 65명을 배정받아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업하던 시절, 그해에는 한 해 동안 반이 두 번이나 바뀌었던 해였기도 했었다. 학년 초인 3월에는 한 학년을 우열반으로 나누어 편성하였으나 열반 학생의 학부형들의 빗발치는 비난과 상부기관에의 진정으로 급기야 학교가 감사를 받게 되고 시정명령을 받아 6월에 다시 반 편성을 해서 한 학년 열 개 반을 모두 보통반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반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우리 반 학생들이 스스로 이렇게 불렀다)였다고 할까.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였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이후 우리 학교는 대입 진학 성적이 월등하게 좋아 서울대 진학 전국 10위권에 들어 학생들의 자부심도 대단했지만 학부형들의 열성도 가히 굉장하였다. 그럴수록 담임의 책무는 무겁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학년 D반은 학급 장악이 정말 만만하지 않았다. 성적이 탁월한 학생도 많았지만 소위 문제아로 지목된 부적응 학생이 아주 많았다. 개중에는 불량서클에 가입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폭력과 각종 비위행위를 자행하는 아이들이 육, 칠 명이나 있어서 골머리를 여간 썩이는 게 아니였다. 그야말로 학급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틀이 멀다하고 사고가 빈발하였다. 다른 반 학생들을 구타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 등등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한편 감사한 것은 가정환경이 좋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가정적으로 어렵고 공부에 쳐지는 자기 동기들을 끔직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1년이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학급을 경영하였다. 문제아들을 붙잡고 밤을 새워 상담하고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며 마음과 몸을 함께 하였다. 다른 반에서는 불량서클에 가입한 학생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거나 자퇴를 종용한 사례도 많았지만 나는 끝까지 함께 안고 간다는 생각으로 잘라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나의 교육철학은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는 생각과 함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나님의 걸작품을 한 순간의 실수나 과오로 말미암아 미리부터 그 밑둥을 자를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먼 훗날에야 안 일이지만 나의 이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기뻐하셨다는 일이요 또한 그때 나의 제자들이 그들도 성인이 되고 아들 낳고 딸 낳아 기르면서 알아주더라는 사실이었다. 여하튼 나는 나의 하나님께 무한 감사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5월 9일, 참으로 이날은 하나님이 나에게 갚아 주시는 날이었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제자들을 만나는 날이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 종종 잠을 설치곤 하였다. 이들도 이제는 졸업한지 30년이 되었으니 나이 50이 되었을 테고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었으니 어떻게들 변해 있을까? 가정은 어떻게 꾸리고 자녀들은 얼마나 두었을까?  다들 훌륭히 자라서 사회에 중요한 한몫을 감당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설레는 날들이었다.

낮 12시에 집으로 찾아온 제자의 차를 타고 산성에 위치한 만남의 장소로 올라가니 제자들이 마당에 나와서 일렬로 도열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나를 맞아주는 제자들 중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이들도 몇 있었지만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참으로 반가웠다. “얘들아, 잘 있었나? 정말 보고 싶었다.” “선생님,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우리도 올곧게 잘 자랐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제자 한 명 한 명을 포옹해 주면서 그들에게서 정말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 제자들이 다 모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 순간 32년 전의 그 아이들을 보듯이 감개가 무량하였다. 나는 감사의 눈물을 5월의 신록 속에 담아두면서 제자들과 못다 한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나의 하나님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실로 32년 만에 거두는 열매가 아닌가! 당시에 학급반장을 맡아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봉집이가 왔다. 그것도 태평양을 건너 단숨에 달려왔다, 친구와 스승을 만나기 위해. 이쯤 되면 자랑하지 아니하고 어찌 배길 수 있으랴. 2학년 D반은 정말 멋진 아이들이고 나는 정말 축복받은 선생이 아닌가!

“선생님,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 말은 나의 소중한 제자 봉집이의 말이다. 봉집이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수 주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꿈에 나를 두 번이나 보았다고 고백하였다.

 
 애들아, 나는 너희들이 정말 소중하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나의 제자요 이 땅의 자랑스러운 국민이다. 부디 모교의 교훈을 잊지 말라.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면서 조국과 민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정직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임을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 풍성한 의(義)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는 나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되기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한다. 다시 만날 때까지 역사를 창조하는 멋있는 삶을 살기를, 안녕 (2009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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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난제 풀이

묵상 2009. 4. 23. 10:41 |
 

1. 화장실에 목숨 건 사나이

 동네 공동변소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시원스레 큰것을 보고 있는 한 소년은 이제사 온통 이곳이 자기 것이 된 듯이 의기양양하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내 차례를! 소년은 늘상 차례에서 밀려나곤 했으니까. “야, 임마, 너는 나중에 봐. 쬐그만 꼬마가 왼 새벽부터 변소에 오기는.” 소년은 날마다 어른들의 핀잔만 받았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어쩌다가 생콩을 갈아 별식으로 칼국수를 빚어 줄 때면 소년은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진다. 먹고 나면 그날은 어김없이 뱃속이 전쟁터로 변하기 때문이다. 설사다. 변소에 가야 한다. 소년은 배앓이를 참지 못한다. 매번 먹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뿐 소년은 또 생콩 칼국수를 먹게 된다. 어른들은 변소가 빨리 찬다고 야단들이다. 소년의 동네는 전쟁 통에 급조된 산동네다. 소똥같이 다닥다닥 들어붙은 판자촌이다. 그러기에 분뇨차가 오지 않는다. 소년의 소망은 온통 변소가 있는 내 집이다.

 시간은 가고 소년은 어느 듯 어른이 되었다. 산 너머 남촌에서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태평양 너머로 양풍(洋風)이 몰아쳐 변소가 슬그머니 화장실로 바뀌고 그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어 내 집 안에 아담한 화장실 하나를 갖게 되었다. 그 동안 강산이 세 번쯤 바뀐 것 같다. 구청의 정화조 차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꼭 집주인을 찾아온다. 참 세월이 많이도 변한 것 같다. 이제는 신 새벽에 동네 변소에서 줄 설 일은 없어졌다. 어른들의 핀잔을 받을 일도 없다. 화장실에 앉아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겨도 된다.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소년은 어느 새 중년의 신사가 되었고 세월은 바뀌어 남북으로 길게 벋은 고속도로 위로는 까만 세단들이 꼬리를 물고 시원스레 달린다. 이제 중년의 신사는 다시 새 소망을 가져 본다. 화장실이 안방에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식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식탐(食貪)을 마음껏 부려도 좋다. 왜냐하면 화장실이 보호해 주니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나와 화장실만이 알뿐이다. 한밤중이든 신 새벽이든 내가 갈 때면 언제든 맞아주니까 말이다. 말 타듯 양변기에 의기양양하게 앉아서 볼일을 시원히 보고 손을 뒤로 돌려 엄마의 젖꼭지 같은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모든 비밀은 물과 함께 흘러가 버린다. 아, 좋은 세상이다. 나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시간은 또 저만치 한참 달려가서 시속 300km의 고속 열차가 중년의 신사를 한 실버타운 앞에 내려놓는다. 중년의 신사는 이제 노신사가 되었다. 노신사는 자기 집 안방으로 들어가 화장실의 양변기에 겨우 걸터앉는다.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양이다. 주름진 손등 위에는 점점이 저승꽃이 번져 나온다. 손이 조금 떨린다. 맞은 편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노신사의 목덜미에는 유달리 잔주름이 많다.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은 꼭 시골 동네 한가운데 터줏대감처럼 엉버티고 자리한 사백 년 된 느티목 밑둥의 주름살 같다. 아내더러 신문을 가져다 달란다. 신문의 문화면을 훑어본다  거기에는 낯선 작가의 꽁트 한 편이 실려 있다. ‘화장실에 목숨 건 사나이’ 천천히 기사를 읽어가던 노신사의 얼굴에 갑자기 경련이 일어난다. 안면 근육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 시작한다. “ 아, 나는 정말 다 얻었는가? / 아니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오히려 다 잃어 버렸어.”


2. 난해한 문제에도 해답은 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인터넷의 개인 블로그를 뒤적거리다가 거기에 실린 이야기를 읽고 나에게 들려준 것인데 자꾸만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아 하나님께 묻기를 계속하였더니 나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어 우리세대와 같이 어두웠던 시절을 살아오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 이야기를 꽁트로 잠깐 재구성해 보았다. 거울 앞에서 이 노신사는 왜 끝없이 절망하는가? 화장실이 가치 없다는 말도 아니요 화장실에 목숨 거는 일이 무가치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 노신사는 자기가 진정 목숨 걸어야 할 곳에 걸지 못했다는 자괴감(自愧感)과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정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유달리 수학을 못했다. 그러기에 나는 수학을 싫어했고 수학이 두려웠으며 수학 시간은 나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소위 명문고였기에 학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 교복을 거부하고 사복을 고집하던 그 때에도 상의(上衣) 중에 남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어느 한 곳에는 언제나 학교 뱃지를 달고 다녔고 그것이 결국 증거물이 되어 학교 훈육주임(생활 지도 부장선생님)에게 교외지도에 걸려 처벌을 받기도 하였다. 자연히 국∙영∙수 세 과목은 필수 과목으로 다들 열심히 하였다. 나는 국어 영어 과목은 전교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수학은 만점이 100점이면 25점을 매번 넘지 못했다. 한번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 집에서 수학 문제를 풀다가 너무나 풀리지 않아 머리를 벽에다 사정없이 박으며 내 머리를  탓하면서 나를 낳아준 부모마저 원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는데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수학 문제집을 바깥에다 냅다 던져 버렸더니 종이가 퉁퉁 불어 다시는 못쓸 줄 알았더니 며칠 뒤 다시 햇볕에 말려서는 그 문제집으로 내 생애 처음으로 수학 점수 50점을 받는 쾌거를 거두고는 전교 모의고사에서 럭키 세븐(전교 7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수학 선생님이 이를 아시고 동정 점수를 주시곤 한 기억도 있다. 나는 이때 깨달을 것이 있었다. 대학에 갈 때는 수학이 없는 곳으로 가면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결국 나는 우여곡절 끝에 국어 선생님이 되었고 너무나 자랑스런 나의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수학이 없는 전공의 선택이 내 인생에 정답이 된 셈이다. 나에게 이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에게 인생의 정답을 알려 주시고 그 길을 가게 하셔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날마다 나의 전공에 기쁨과 보람을 가지고 더 깊고 넓은 지식을 제자들에게 가이드해 줄 수 있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3. 감사가 해답이다

 지난여름 아들이 있는 수원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4층에 있는 아들의 원룸에서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다 내려와서 1층의 마지막 계단을 밟다가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서 왼쪽 엉덩이와 오른 쪽 팔목을 심하게 다친 것이다. 전날 저녁에 비가 많이 와서 미끄러운 대리석 계단을 더욱 미끄럽게 만들고 있었음을 내가 미처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넘어지면서 엉겁결에 오른 손을 짚다가 계단 끝부분에 오른 쪽 팔목이 부딪히면서 팔목도 다치게 되었다. 물 위에 넘어진 나는 너무나 아픈 고통으로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아들을 부를 만큼의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감사의 마음이 용솟음치며 나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그런 놈이 아닌데 이상하잖아. 평소 같으면 틀림없이 불평이나 원망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을 터인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픈 통증의 신음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벌벌 기어서 4층까지를 되돌아 올라와서는 아들의 방문을 겨우 비틀었다. 이틀간을 아들의 방에 머물면서 자가 치료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불평의 말이 나오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지금도 그 일이 불가사의하다. 아들과 딸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지 않는다고 성화였지만 팔이 붓지 않고 다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보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감사의 시험을 치렀다고 자꾸만 생각이 되었다.

 문제에도 난이도(難易度)가 있듯이 세상의 삶에도 난이도가 있다. 세상에는 쉬운 삶을 두고 굳이 어려운 삶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려운 삶이란 곧 꼬여 있는 삶, 뒤틀린 삶, 막혀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닫히다와 열리다, 뚫리다와 막히다 등 낱말에도 짝이 있다. 나의 삶이 막혔는가? 절망하지 말고 짝이 되는 반의어를 찾아보라. 막히면 뚫으면 되고 닫히면 열면 된다. 그러면 혹자(或者)는 나에게 이렇게 힐문(詰問)할지도 모른다. “이 바쁜 세상에 나하고 말장난하자는 거요? 그쯤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소? 시건방진 짓거리 그만 하시오.” 하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이 정도 반의어 하나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라고. 문제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옥조여오는 엄청난 상황 앞에서 당황해 하고 주저앉을 뿐 상황 너머에 있는 해답의 길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막힌 것을 뚫어주고 닫힌 것을 열어주는 길 되시고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해 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의 전문가요 생명을 살리는 전문가이다.

 성경 누가복음 17장에는 열 명의 문둥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병을 치료받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열 명의 문둥이가 모두 치료를 받았지만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와 감사를 드렸을 때 주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셨는가?  “이 이방인 이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 기록에서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감사를 돌리는 행위를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주님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신 것을 보라. 문둥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 곧 죄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는 구원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감사하지 않는 삶은 원망하는 삶이다. 성경 민수기 14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원망했을 때 하나님은 이 백성이 나를 멸시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꼬이고 뒤틀리고 저주받은 삶이 될 수밖에 없다.


4. 감사는 훈련이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이 나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권면이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을까? 이는 범사에 감사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훈련과 인고(忍苦)의 끝에 깨닫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당신의 아들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면 선뜻 감사하며 순종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순종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만큼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감사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는 순종이 있기까지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훈련과 인고의 세월이 있었겠는가!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의 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기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다. 우주의 창조주요 주재자이신 주님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연후에 십자가의 구원 사역에 순종할 수 있었다. 감사는 쉬운 삶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장하고 하나님이 책임지는 삶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다. 우리 모두 쉬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감사하라. 억지로라도 감사하라. 그러면 당신의 삶에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는 축복을 불러오고 원망은 저주를 불러온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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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 작품 속의 에로스


이 탑의 코니스 위에는 기다란 깃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들의 눈길은 이 깃대로 쏠렸다.

시계가 여덟 시를 친 지 몇 분 뒤에 무엇인지

깃대 위로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검정 깃발이었다.


※ 검정 깃발:사형을 집행했다는 표지


 위의 지문은 19세기 말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의 소설〈테스〉290쪽에 나오는 글귀이다.

이 소설로 인하여 작가는 붓을 꺾을 수밖에 없었지만 시•공간을 초월하여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방인인 나에게도 영원히 불멸의 감동으로 다가오기에 여기 나의 글의 서두에 잠깐 인용하게 되었다.〈테스〉는 당시의 영국 사회의 도덕적 편견과 사회적 인습, 인간의 운명 등 아주 복합적 주제를 작품의 배면(拜面)에 깔고 씌어진 작품이지만 내가 이 글에서 가장 주목하고자 하는 이슈는 한 남자의 에고이즘에 희생된 한 여인의 삶의 역정이다.


2. 어느 노교수의 강연

 

 나의 둘째 딸이 대학 입학 OT에 다녀와서 나에게 들려 준 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 새내기가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 강당에 집결하여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 노교수가 등단하더란다. 사회자의 멘트에 의하면 이 학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기 교수라는데 등단하여 내뱉는 몇 마디가 심상치 않다.

“여러분은 이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다음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목숨을 거십시오. 반드시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후회 없이 마음껏 노십시오.”

“둘째, 후회 없이 마음껏 사랑하십시오.”

“셋째, 후회 없이 마음껏 공부하십시오.”

 나는 지금도 이 노교수의 말을 마음에 두고 있다. 그 당시 나의 딸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 사람이 젊은 후학(後學)들에게 시의적절하지 않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나 하고 마음속에 이상야릇한 분노가 일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기막힌 강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아픔과 분노로 밤을 지새우는 자들이 또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의 불명예 국가이다.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이혼율을 낮출 만한 방안은 없는가? 가을이면 낙엽은 어디서나 지천(至賤)으로 많다. 그러기에 그 낙엽이 있을 곳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내장산 단풍은 가을의 진수성찬이다. 그러나 미화원 아저씨의 빗자루에 쓸려 가는 낙엽은 피로의 퇴적물(堆積物)일 뿐이다. 이 세상에는 온통 사랑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빛을 발하는 사랑은 얼마나 되는가?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랑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나의 사랑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가?


 3. 에로스의 본질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랑을 네 가지로 나누었다고 한다. 아가페, 스톨게, 필레오, 에로스.

이 분류를 보면 에로스는 사랑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나는 최근에 참으로 존경하는 벗을 잃었다. 언제나 믿음의 상담자요 인생의 동반자로, 만나지 않아도 기억만 하면 즐거운 벗이었다. 오랜 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두 아들의 간을 받아 이식 수술을 하였지만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버지를 위하여 자기의 귀중한 장기를 드린 두 아들의 섬김을 보면서 스톨게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 장한 두 아들을 통하여 나의 벗을 생각하게 된다.

 에로스는 조건적 사랑이다. 그러기에 사랑을 준 자는 준만큼 받기를 원한다. 무조건적이라는 말은 에로스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의 무한 사랑, 어버이의 주는 사랑, 형제간의 나누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에로스에 있어서의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에로스의 또 다른 측면일 뿐이다. 내가 상대에게 베푼 만큼 나도 상대로부터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 에로스의 속성이다, 몫이 돌아오지 않으면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가 싹트며 분노는 둥지를 틀고 내 속에서 자리 잡게 되면서 자라가게 되고 언젠가는 증오로 폭발하게 된다.   


4. 성경적 결혼은 축복이다.

 

 사랑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던 결혼 생활도 세월이 가면 ‘생활’이란 방패 뒤에 나를 교묘히 감출 수 있게 되면서 고운 정은 어느 새 미운 정으로 자리바꿈하고 허울 좋은 세월 속에 길들어져 있는 나는 사악한 한 마리의 포식자(捕食者)로 바뀔 뿐이다. 나는 결국 이런 자였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에 빠지면서 자신의 추한 모습에 끝없이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나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한 남편이나 아내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당신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상대에게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란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는가?” 라고. 우리는 언제 이런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는가? 상대방을 통하여 인간 존재의 정체성(正體性)을 깨달았을 때 즉, 인간은 궁극적으로 타락한 존재요 이기적 존재라는 것, 자기 생존을 위하여 철저히 상대를 이용하려는 에고이즘을 보았을 때 다시 말하면 위장된 사랑을 보았을 때 당신은 상대에게서 소름끼치도록 차가움을 느끼며 끝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러면 잠깐 시각을 바꾸어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에 관한 내용은 어떠한가를 한번 살펴보자.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9:9)” 결국 성경은 결혼이 해 아래서 의미 있는 삶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엡5:31∼32)” 라고 말하면서 결혼의 성스러움을 강조하였다. 결국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5. 행복의 용광로는 결코 꺼질 수 없다.

 

가) 열정을 가지라

 나는 올해로 아내를 만난 지 41년을 맞는다. 7년 간 연애하고 34년을 부부로 살아왔다. 나를 아끼는 어느 인생 선배는 연애를 하려면 오래 하라 그러면 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다는말을 했다. 정말 꼭 맞는 말이다. 연애를 오래 하다보면 장점과 단점이 다 보이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상대의 단점이 보이면 실망하게 되고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지만 어느 새 상대가 나에게는 거울이 되어 그 단점이 나의 것으로 확인되어지며 상대에게 미안해지고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다가는 끝내는 둘은 하나가 된다. 그러기에 미운 정도 정이라 하지 않는가. 입 안의 혀도 물릴 적이 있다는데 40여 년 동안 어찌 부부 간에 위기가 없었겠는가. 오랜 세월 동안 굴곡도 많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순결하게 살아오려고 노력하여 왔다. 고지식하리만치 진실하게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여 왔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집중할 수 있었다. 말씀이 나를 지켜 준 셈이다. 요셉을 지켜 준 말씀은 나에게도 능력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찌 여호와 앞에 범죄(犯罪)하리이까(창39:9)” 이것은 신전 의식(神前意識)이다.

 행복은 거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 안에서 계속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부부간의 갈등으로 정말 힘들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마다 좋은 것만 생각해야 한다. 첫 만남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보라. 첫사랑의 아름다움도 되씹어보라. 여건이 허락되면 추억의 그 장소에도 한번 들러보라. 얼음장 아래에서 새봄을 준비하는 미나리의 새싹처럼 당신들의 사랑의 새순은 얼어 죽지 않고 그날 그곳에서 새봄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이러다 보면 당신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들여오는 당신도 소스라쳐 놀라는 이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데!” 이 순간 행복에의 열정을 가지고 사랑의 용광로를 다시 지피라.


나) 배려하고 존경하라

나를 지으신 자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아시고 돕는 배필로 하와를 지어 주셨다. 부부간의 사랑을 성경적으로 정의하면 배려와 존경이라 할 수 있다. 배려를 일방적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대로부터 받음이 없이 무한정 베풀 수는 없다.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서로가 보완하여 주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면 언젠가는 상대방도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지어진 상대방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 속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속성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약점까지도 사랑하는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되면 이루리라는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감사와 기쁨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경하고 나에게 돕는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여보, 부족한 나에게 당신은 너무나 과분하오.” “여보,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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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딸이 예약해 준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해 부산역으로 나오는 중이다. KTX나 최소한 새마을이라도 예약해야겠다는 딸의 고집을 무참히 꺾고 굳이 무궁화를 고집하였던 두 가지의 이유가 나에게는 있었다. 우선 딸애에게 거금 오만 원의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고 다음으론 차창가로 흐르는 풍광을 보며 여유로운 여행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애의 마음엔 자기 아빠가 퍽이나 안쓰러운가 보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의 가정은 마산으로 이주를 했었다. 그때 일곱 살의 어린 나이로 난생 처음 기차를 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시절은 무임승차가 많아서 역무원이 열차 안에서 수시로 승차권을 검사하는 일이 있었다. 나도 초등학교 때 방학을 맞아 고향을 오가며 몇 번이나 무임승차를 한 기억이 있다. 역무원을 피해서 객차 화장실에 숨거나 승객 좌석 밑에 숨기도 하였다. 그 당시엔 기차의 등급도 특급열차, 급행, 완행의 세 등급뿐이었다. 서울행 통일호 특급열차는 모두에게 꿈의 열차였다. “나는 언제나 통일호를 한번 타 보나” 하면서 어린 마음에 꿈을 키워 보기도 했지만 초등학교를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나에게 돌아오는 몫은 언제나 완행뿐이었다. 세간에서는 완행을 십이열차라 불렀다. 자랑스런 그 명성 그대로 서울행 십이열차가 용산역에 도착하는데는 꼭 열두 시간이 걸렸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나에게도 한양을 구경할 기회가 왔다. 1966년 1월 초순, 대학입시를 위해 청운의 꿈을 품고 아침 8시 서울행 십이열차(승객 칸 열두 량을 달고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적이 있었다. 열차는 숨차게 북으로 북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십이열차는 그 정체성(正體性)을 확인이나 하려는 듯 간이역도 빼놓지 않고 인사를 꼬박꼬박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산을 출발한지 꼭 여섯 시간만에 열차가 대전역 플랫폼에 미끄러지듯 들어가기가 무섭게 “대전~, 대전~. 광주, 목포 방면으로 여행하실 분은 여기서 호남선으로 바꾸어 타시길 바랍니다. 열차가 많이 연착되오니 가급적 역구내에서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목쉰 소리의 역무원 안내 방송이 잠든 승객을 깨운다. 좌석에 앉은 사람, 통로에 서거나 그냥 퍼질러앉은 사람, 정말 열차 안은 조선 팔도의 군상들로 메뉴가 다양하다.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다. 객차는 승객들을 꾸역꾸역 밖으로 토해낸다. 빈 배를 채울 기세로 사람들은 우루루 통로 쪽으로 몰려나간다. 플랫폼에 판자촌처럼 엉성하게 꾸며진 가락국수집 좌판은 갑자기 촌 장터같이 붐비기 시작한다. 대전을 출발한 열차가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왔는가 싶었는데 이제 겨우 천안이다. 얼마 전 대전에서 통일호와 급행열차를 대피해 무한정 역구내에 눌러 앉았는데 열차는 천안에서 또 늑장을 부린다. 목과 손등에 때가 꾀죄죄하게 낀 소년들이 열차 안으로 들어와 호도과자를 팔고 있다. ‘천안 호도과자 사려―’ 길게 끄는 소년의 변성음에 충청도의 밤은 깊어만 가고 철마는 또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간다.

 
 밀레니엄 시대인 지금은 무궁화가 완행이다. 이제 나도 시속 300키로의 초특급을 타도 될 만큼 넉넉해졌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물질의 복도 아주 넉넉히 받았다. 그런데도 굳이 완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나는 완행을 타야 마음이 편하다. 특급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만 잘 살면 되는가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빚 진 자다. 모두에게 빚 진 자다. 그것을 갚아야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사치가 어울리지 않는다. 언제나 구수한 된장국이 좋고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조국의 산천이 좋다. 나는 지금 34평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런데 자꾸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너무 잘 사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정말 부지런히 살아 왔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아내는 무지기도 주기를 좋아한다. 이걸 보면 나와 아내는 하나님이 짝지어 준 천생 연분임이 틀림없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경험한 일이다. 암탉이 알을 낳으면 모아지는 대로 교회의 전도사님 댁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 생기면 교회로 가져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어머니가 광신자(狂信者)로만 보였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더니 나의 장모가 그렇고 나의 어머니가 그랬다. 그러니 모두 한 통속이다. 이제는 나의 딸, 아들이 그러하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주어 본 자만이 주는 자의 기쁨을 안다. 나는 이 기쁨은 누리면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 평생 부지런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면서 분외의 욕심을 부리지 않으셨다. 그리고 남의 말을 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 앞도 다 가리지 못하면서 왜 남의 말을 하나?” 하셨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정직을 배웠고 나의 어머니에게서 베품의 행복을 배웠다.

 
 나는 이번에 나의 생의 반려자인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경복궁을 둘러보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딸, 아들과 함께 근정전 앞에서 역대 왕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고 역사의 허망함도 느꼈다. 사람은 가고 역사는 남는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나는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아들과 딸들에게는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할까를 묵상해 보면서 하나님의 싸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나의 딸과 아들이 한없이 자랑스럽다. 여보, 사랑해. 아들아, 딸들아, 사랑한다. 나의 하나님, 언제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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