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찾는 사람들

묵상 2009. 9. 16. 13:51 |
 

 나는 고향이 둘이다. 하나는 아버지의 고향이고 하나는 내가 태어난 나의 고향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처가살이를 했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왜 아버지는 고향을 등졌을까? 아버지가 등진 고향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곳을 찾기만 하면 어릴 적의 추억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먼 훗날 아버지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이 고향의 양지바른 산자락 밑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두메산골이다. 그곳 산자락 밑에 일가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살고 있다. 같은 성씨가 대를 이어 살아가는 씨족마을이기에 옆집에서 기침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다. 논보다는 밭이 휠씬 많은 마을, 낮닭이 한가하게 울고 삽살개가 마을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산꿩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예부터 어른들은 이 마을이 입구는 좁고 속은 넓어서 꼭 단지 같다 했다. 그래서 단지마을이라 하던가. 봄철이면 여기저기 밭두렁에는 자운영 보랏빛 꽃이 피고 피기가 올라온다. 그러면 아이들이 피기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설, 추석이면 어김없이 일 년에 꼭 두 번씩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오곤 하였다. 우리 집이 예수를 믿었기에 아버지는 고향을 찾아올 수 없었다. 문중에서는 아버지를 아예 죄인처럼 취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집안의 장남이 예수 믿는 아내에게 미쳐서 조상 봉제사를 팽개치고 고향을 등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사실 나의 아버지는 장남이 아니었다. 육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장남이 남의 집 양자로 가 버리자 졸지에 장남의 무거운 짐을 떠맡게 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만주를 두 번이나 갔다 오셨다. 단지 살기 위하여. 한 번은 남만주로 또 한 번은 북만주로, 솔가(率家)하여 이주하지 않았던 것은 그놈의 추위 때문이라 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견디겠는데 추위는 안 되겠더라 하시면서 그때 일을 들려주실 때의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巴人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강의할 때면 의례히 나의 아버지의 간도(間島)의 삶을 나의 삶으로 치환(置換)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곤 하였다. 그러면서 무슨 대단한 영웅이나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의 경험을 나의 사치한 대리경험으로 바꾸어 오만을 떨었던 일을 나는 지금 철저히 회개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과 아버지의 고향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추석이면 언제나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곤 했다. 점심을 일찌감치 먹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산마루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 산은 먹을 것이 많다. 다래, 머루가 산 속에는 지천으로 많다. 빨갛게 익은 포구를 따 주는 어머니의 손길은 또 얼마나 따스한지, 가을산은 간식(間食)이 풍부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거저 따 먹으면 된다. 계곡 아래로는 솔바람이 불고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걸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녘이면 어머니와 나는 산마루에 이른다. 산 아래에 펼쳐진 고향 마을은 언제나 정답다.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오르고 초동(樵童)들이 나뭇짐을 지고 사립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는 일 년에도 몇 번씩 내가 태어난 고향과 아버지의 고향을 찾는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나의 아내의 고향이기도 하기에 더욱 자주 찾는다.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 변했다. 변소와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에 태어나서 나는 결혼도 했었지만 요사이는 화장실과 처가는 가까울수록 좋다 하니 그만하면 세상은 참 많이 변하기도 했다 싶다.

 

 고향은 언제나 좋다. 몸이 편해서 좋고 마음이 푸근해서 좋다. 이제는 마을도 변하고 길도 변하고 논두렁 밭두렁도 달라졌다. 그러나 산은 예전 그대로다. 마을 뒤 산자락 끝 내가 뒹굴던 묏등이 그대로이고 왕소나무도 그대로이다. 마을 뒤 못에 올라가 둑길을 걸어 본다. 멀리 두어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린 시절의 고향동무는 많이들 대처(大處)로 나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벗이 몇 안 된다. 아, 참으로 시간은 물처럼 흘러갔구나.

 

 나는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을 참 좋아한다. 거기에는 본향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내 영혼에 안식을 주는 구절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인생에게 허상의 고향과 참 본향의 고향이 있음을 분명히 구별하여 말하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도 늙으면 고향을 찾는다. 이것은 아마 고향에서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고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동물에게는 대체로 회귀본능(回歸本能)이 있다. 이것을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고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종내에는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찾는 고향은 허상이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에 있다.

 

 성경은 인간을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주 앞에서는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 라고 하였으니 영락없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하였다. 또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오른 자들은 모두 자신을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하였다.

 

 해 아래서 새것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속히 지나간다. 하나님이 나에게 네 육신의 장막을 걷어라 명하시면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나 미련 없이 나의 장막을 걷어야 한다. 나의 본향은 하늘에 있다. 이 세상이 목적지가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겨본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성령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하는 말씀 앞에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해 본다. “주여, 오늘도 겸손과 온유로 당신을 닮아가게 하소서. 나의 본향은 하늘에 있나이다. 아멘”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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