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리의 풍경 스케치
일산의 지하철 대화역 광장 벤치에서(2008년 6월 25일, 저녁 무렵)
1) 한 남자와 한 여자
남자는 30대 여자는 40대로 보이는데 여자는 남자 옆에서 두 다리를 꼬고 앉아 부지런히 줄담배를 피우면서 쉴 새 없이 지끌이며 남자를 힐긋거리고 있고 남자는 여자에게는 도대체 관심이 없다는 듯 맞은 편 건물의 미인 클럽 간판에만 초점이 맞춰있다. 두 사람이 분명히 나란히 앉았는데 주고받는 말솜씨가 부부 같아 보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남매는 더욱 아닌 것 같다. 여자의 얼굴은 어디를 뜯어보아도 자연산은 아닌 것 같다. 보톡스의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볼기짝이 탐스런 유방 같다. 흰 블라우스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온통 우유빛으로 현란할 정도이다. “야, 내일 또 만날 수 있니?” 여자가 남자에게 추궁하듯 내뱉는 한 마디가 열 걸음 밖의 벤치에 앉아 있는 나의 뇌리를 어지럽혀 버린다. 둘은 압침에 엉덩이가 찔린 듯 반사적으로 벤치에서 몸을 발딱 일으키더니 여자는 남서울 좌석버스로, 남자는 문산행 좌석버스로 몸을 숨겨 버린다.
2) 한 남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갈머리 없는 대머리 남자가 내 옆 벤치에 앉아서 김밥천국의 은박지에 싸인 원조김밥(어제까지도 한 줄에 1000원 했는데 오늘 50%나 올랐다) 한 줄을 왼손에 움켜쥔 채 한 입에 쑤셔넣고 질근질근 씹고 있다. 오른손에는 250ml 서울우유 팩이 하나 쥐어져 있다. 얼굴과 반소매 아래의 양팔이 온통 구리빛이다. 나의 손목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니 이 남자에게는 저녁 성찬(?)인 모양이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 앉아 있던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광장에 내려앉는다. 개중에는 외다리로 걷는 놈도 있다.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 상이용사가 있단 말인가! 왠지 이 남자에게서 고독이 묻어난다.
2. 인간 시장
'인간 시장'하면 작가 김홍신을 잊을 수 없다. 그 이전은 베스트셀러라 하더라도 10만부에 불과했던 우리 출판계에서 80년대 초에 이 작품이 출판되면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을 갱신하게 되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김홍신의 작품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단지 인간 시장이라고 규정하고 싶을 뿐이다. 인류발달의 변천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보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지식∙정보사회로 발전해 왔다고들 한다. 다시 어떤 사회로 발전해 갈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제는 인류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천해가든 그 사회가 나에게는 불확실하며 그 사회가 나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불안하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나 치세보다 난세가 더 많았다. 지금은 분명 난세다. 미국은 1930년대 경제공황 이래 가장 처절한 삶을 맞고 있다. 어제 저녁 CNN방송은 미국이 지금 2차 대전 이후 가장 암울하고 긴 터널에 들어섰다는 절망적인 보드를 쏟아놓고 있었다. 나는 시카고에 계시는 형님에게 장거리 전화로 근황을 물어 보았다. 나의 형님 내외는 조카 셋을 거느리고 29년 전에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 투자은행들의 금융부실 위기가 급기야 세계 금융위기를 가져오고 그 여파로 세계의 경제가 빙하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시장에는 잡다한 것들이 있다. 사람과 상품, 선전과 매매, 여흥과 만남 등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나는 시골 태생의 해방둥이다. 그러기에 면소재지를 돌며 5일마다 서는 장날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어쩌다 어머니를 따라 장터에 가게 되면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국화빵이 있고 고무신이 있으며 꽈배기 과자도 있고 야바위꾼도 있다. 어른들의 사타구니 사이로 들여다보는 야바위꾼의 화투솜씨에 넋이 나가 있을라치면 아이들은 저리 가라는 어른들의 호통소리에 밀려나 어머니의 손에 끌려 집으로 오면 그날은 정말 온세상이 내 것이 된 기분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장터에서 사돈을 만나고 시집 간 딸애의 소식을 듣는다. 외손자는 잘 자라는지 사위는 내 딸에게 고맙게 하는지 조심스레 물어 보면서 장터국밥으로 사돈끼리 신뢰(信賴)를 보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인정이 있고 나눔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시장은 어떤가? 나는 몇 년 전 미국 여행 중에 월마트를 구경한 적이 있다. 정말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시장도 거대하다. 차로 쇼핑을 하고 신용카드로 결재한다. 그 어디에도 나의 어린 시절의 시장은 없다. 거기에는 편리함과 화려함, 풍요함이 있을 뿐이다. 현대의 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원리가 지배한다. 그러기에 경쟁이 미덕이요 최고의 선이다. 패배자에게는 자비가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인간 밀림이다. 인간 밀림 속에서 타잔이 되는 것은 최선이다. 그러나 아무나 타잔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연적으로 인간 시장 속에서 수많은 인간은 좌절하고 절망한다.
3. 한국 사회를 조망하며
나에게는 하나의 큰 자부심이 있다. 나는 수업 중에 어쩌다가 제자들을 향하여 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면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개중에 어떤 당돌한 놈은 선생님이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당당하냐는 듯 못 마땅해 하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나의 말의 당위성을 설명하느라 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기 일쑤일 때가 많다. 나는 해방되던 해에 태어나 여섯 살에 6∙25를 맞았다. 전쟁이 낫지만 우리 마을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다. 그래서 피난이래야 몇 번 집을 비우고 마을 아래 강변에서 노숙을 한 것이 고작이다. 그때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보리를 볶아서 만든 미숫가루를 먹어 본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마을은 좌익 사상으로 무장한 빨지산 무리들로 인하여 밤이면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 마을은 아랫마을과 합하여 상당히 큰 부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꼭 몇 집은 불이 나고 밤중에 마을 앞 당나무 아래에서는 만세소리가 나며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옆집으로 피신하곤 하였다. 아침이면 어느 집 어르신이 불길에 던져져서 새까만 숯덩이가 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이 전해지곤 하던 일도 있었다.
나의 집은 빈농이었다. 나의 선친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를 두 번이나 갔다 오신 분이다. 무슨 역마살이 끼어서 간 것이 아니라 가난이 죄였다고 할 수 있다. 나라가 해방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우리 집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 우리 집은 마산으로 이주를 하였다. 마산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몇 안 되는 도시였기에 피난민과 고아들로 넘쳐났다. 고아의 도시, 마산. 나의 소년 시절의 절반은 이렇게 여기 마산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아홉 살에야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서 2년을 늦게 출발한 셈이다. 전후(戰後)의 학교라 그런지 한 학급의 인원은 70명도 넘는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였다. 더더욱 학급생의 절반은 고아 같았다. 내가 열다섯 살 되던 해(1960년) 중학교 1학년 때 3∙15 의거가 터졌다. 부산에서 고등학생 형님들이 마산까지 데모 원정을 왔다. 우리는 뭣도(아무것) 모르고 형님들을 따라다니며 구호를 외쳐댔다. 학교는 한 달 동안 휴교를 했고 4월 중순에야 개교를 했다. 나는 나의 파란 만장한 젊은 시절을 구태여 들추어내고 싶지 않다. 다만 나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묵묵히 행동하며 치켜보아 왔다고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한국은 60년대를 거쳐 이후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지나 밀레니엄 시대를 통과하고 2010년대를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왔다. 사회는 발전해 가야하고 우리나라도 끊임없이 발전해 가야한다. 이것이 대명제다. 나는 보릿고개를 체험한 세대다. 정말 가난을 저주할 만큼 가난을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현대인들은 웰빙 음식이라 하여 보리밥을 먹겠다고 보리밥집을 찾아다닌다지만 나는 지금도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 눈물에 젖은 빵조각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한 서양 속담이 아니라도 가난은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요 슬픔이라고 나는 감히 단정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난과 싸워오면서 내 인생의 절반을 소비해 버렸다. 그렇다고 나는 헛되게 세월만 축낸 것은 결코 아니다. 가난에 내 인생을 저당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허둥대다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이 땅에 두 발을 엉버티고 살아오면서 비굴하지 않게 교만하지 않게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지금의 한국을 이루기까지 우리의 선배들은 많은 대가를 치러왔다. 머나먼 정글에서 고귀한 생명을 바쳤고 열사의 사막에서 땀 흘려 고국으로 송금하였으며 이국땅 지하 갱도에서 막장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도 잘 살아보세 라고 외치면서 “빨리빨리‘의 닉 내임을 만든 나라. 콧대 높은 양키의 눈에서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한국인이 몰려온다‘ 라는 표지 기사의 주인공이 되었던 나라. 땀과 눈물의 열매는 고귀하여 이제는 우리도 가난을 퇴치하고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당당하게 진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아직도 진정한 행복이 없는가? 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가? 이게 모두 과부하(過負荷)가 실렸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과부하가 실리면 지치게 마련이다. 이제 조용히 되돌아볼 때이다. 나의 좌표를 확인해야 할 때이다. 내가 어디쯤 와 있으며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가? 진정한 행복은 개인도 행복하고 사회도 행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거저 행복해지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우리는 한 번쯤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공과 과를 싸잡아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단순세포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 부정은 부정을 낳고 비난은 비난을 낳는다. 인정하고 칭찬할 것은 인정하고 칭찬해야 한다.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것은 행동 발달 심리학의 기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불의와 타협하라는 말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불의와 타협하여서도 안 되지만 형제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할 것이다. 우리의 주위에는 남의 잘못을 도무지 용서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나 결벽증 환자가 의외로 많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독불장군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 한국 사회는 칭찬에 인색하다. 이제는 자신에 너그러워져서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 칭찬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칭찬하자. 잘 한 것만 가지고 칭찬하지 말고 잘 할 가능성을 보고 미리 칭찬하자. 한국 사회는 앞으로도 수많은 과제를 안고 고민하면서 가야 할 것이다. 이때 그 사회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인 나 자신이 방관자가 되어 있거나 대안 없는 비판자가 되어 있지 않나 항상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선포한 말씀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라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그분이 통치하시는 곳이다. 그러기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지상에 존재하는 어느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였듯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느 공간(히11:16)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활하여 가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이 세상에 하나님 자신을 필요로 하셨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기자는 이 사실을 명쾌하게 말하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기에 죽으심이라(빌2:6-8)”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은 죄의 대가로 낙원을 잃어 버렸다. 낙원을 잃어버린 인간에게는 행복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의 회복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으로 일시적 행복을 찾으려하나 그것은 사이비 행복이요 위장된 행복일 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악과를 잘못 인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왜 만들어 놓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 유혹을 받게 했느냐…등등. 선악과에 대한 오해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선악과는 분명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정립이다. 선악과는 하나님 당신은 창조주(創造主)이시요 인간은 당신의 피조물(被造物)임을 분명히 규정하여 당신의 주재권(主宰權)을 선포한 사건이다.
행복 상실의 궁극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인간의 교만과 탐욕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과연 있는가? 혹자(或者)는 무소유(無所有)를 주장하지만 무소유가 능사(能事)일까? 무소유를 주장한다고 무소유가 되는가? 무소유가 되었다고 교만이 사라진 진공상태가 되는가? 결코 아니다. 오직 전능자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그분에게 돌아가는 길뿐이다. 그리하여 내 영혼이 쉼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부활 후에 갈릴리 바닷가로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면서 다정하게 다가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만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찾아올 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두 가지 지상명령(至上命令)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다. 그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하라 하는 것이요 둘째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와 예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먼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아가고 밖으로 이웃을 향하여 사랑과 복음을 나누어 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