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책 그리고 캠퍼스

묵상 2012. 10. 10. 16:13 |

“선생님, 김철입니다. 댁으로 몇 번 전화 드렸더니 소식이 없어 외국 나가셨나 했습니다”

언제나 들으면 반갑고 다정한 그 때 그 목소리의 제자 음성이다. 가을과 함께 묻어오는 추억의 목소리들, 올해 가을은 나에게는 유난하다. 아내의 육순을 맞는 가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도 가을이며 밤나무 아래에서 가슴조리며 기다린 것도 역시 그해 가을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내가 즐겨 찾는 여기 시립대학교 캠퍼스엔 서서히 가을이 오고 있다. 학생들의 옷맵시가 사뭇 달라졌다. 남자야 뭐 늘 그렇지만 여자는 패션에서 계절을 읽을 수 있다. 소매가 길어지고 셔츠 위에는 가벼운 니트가 걸쳐지면 이제 가을이다. 옛날에는 두툼한 대학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도서관을 맴도는 것이 캠퍼스의 낭만이었는데 이제는 삼삼오오 교정의 비치파라솔 밑에 앉아서 스마트폰 조작으로 바쁘다. 님은 먼 곳에 있는 걸까?

 

 

 나는 오늘이 행복하다. 오늘 내가 대학의 캠퍼스를 거닐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여기 대학은 젊음이 있고 꿈이 있고 낭만이 있어서 좋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이 태어난다. 지난 사십여 년 전의 나의 대학생활은 정말 각박하였다. 나에게서의 대학 사년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고 낭만이 아닌 사실(寫實)이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낭만을 그리워하고 아직도 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고호와 고갱이 좋고 르느와르의 욕녀(浴女)가 좋다.

 

 

 캠퍼스의 한쪽켠에 자리잡고 있는 연못은 꽤나 고풍스럽다. 연못가는 이끼 낀 돌들이 어깨동무하며 주위를 감싸고, 물 위에는 부레옥잠이 무리지어 떠다닌다. 연못 위를 가로지른 반달 모양의 나무다리 위에서 수십 마리의 참붕어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원을 그리며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그대로 동양화 한 폭이다. 그러나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다른 한 손에는 아메리카노 커피잔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옛적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니 말하자면 퓨전이라 할까?

 

 

 가을 단풍의 왕자는 단연 능수버들이다. 단풍이 꽃보다 배승(倍勝)하다는 것은 물론 정비석의 ‘산정무한’에서 알았지만 능수버들의 단풍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정말 몰랐다. 연못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기 능수버들은 실실이 황금색깔을 띠었다. 꼭 페르시아의 황금빛 카펫 같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스마트폰에 담아보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두고 보아야지, 꺾어서야 되는가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캠퍼스에 찾아올 때마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많은 것에 고마워하고 많은 것을 보려 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이모작의 시기에 대학 캠퍼스를 찾을 수 있고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참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얻어진 행복이라 생각되기에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첫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아내에게 고맙다. 아내를 만난 지 사십사 년 동안 많이도 싸워 왔지만 아내는 내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또한 나는 자녀들에게 감사한다. 다들 잘 자라왔으니까. ]

 

 

 캠퍼스에 소리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는 캠퍼스를 가로지르며 뻗어있는 넓은 보도 위에서 이 소리들을 맞고 있다. 캠퍼스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소음이 아니다. 나뭇잎 부딪는 소리, 낙엽 갈리는 소리, 보도 위로 굴러가는 젊음의 구두소리는 아름다운 화음이다. 나는 지금 가을 햇살을 가리는 파라솔 밑의 벤치에 앉아 이 화음을 즐기면서 책을 읽고 있다, <미술관 옆 인문학>이라는 책을.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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