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 대로 거두리라

묵상 2008. 12. 14. 23:41 |
 

1.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

 
 아내를 만난 지 40년, 토요일 오후 3시경 아내가 갑자기 바닷가로 나가자고 불쑥 제안을 한다. 아내와 근간 다소 간의 갈등이 있어 미안하기고 했었는데 오랜만에 아내와 오붓한 나들이가 될 것 같아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아내가 모는 우리의 애마에 지친 몸을 실은 채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돌아 오르기 시작했다. 가을은 바야흐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열병하듯 늘어선 벚나무는 모두붉은 단풍으로 아름답게 갈아입어 4월의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피던 꽃망울보다 승(勝)하다. 나는 잠시 고갯마루 위의 전망대인 팔각정 옆에 차를 세우게 하고 혼자만이 내려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맞은편 3시 방향의 시야에 들어오는 오륙도를 건너다보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바위섬들이 다섯인지 여섯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자리를 옮겨 각도를 달리해서 다시 섬들을 헤아려 보았지만 여전히 확실치가 않다. 정말 기막힌 이름이다. 오륙도! 얼마나 멋진 작명인가. 6시 방향 쪽으로는 나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함께 나오곤 했던 해운대비치가 고즈넉하게 드러누워 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동백섬 끝자락에는 누리마루가 얼씨년스럽게 송이버섯 모양을 하고 들어앉아 있다. 옛날에는 그 자리에 인어상이 있었고 바닷가를 찾아온 연인들이 널퍼짐한 바위 위에 서로의 다리를 꼬고 앉아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깔갈대기도 하면서 비바리들이 바다 밑을 자맥질해 낚아 올린 해삼이나 전복들을 시식해 보던 낭만어린 추억의 장소였었지만 이제는 AFEC 정상들이 다녀간 글로벌 명소로 탈바꿈해 버렸다. 아내는 여전히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참으로 나에게는 소중하고 좋은 아내, 저렇게 착하고 지혜로운 아내를 나는 많이도 괴롭혔지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나로 인해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까…
“여보, 미안해.” 

 
 차는 다시 굽이진 고갯길을 돌아 송정 바닷가 끝자락에 멈춰 섰다. 가을을 재촉하듯 바닷바람이 차갑다. 전봇대 위의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네댓 마리의 갈매기 떼가 배설물을 쏟아놓는다. 그 아래로 줄지어 늘어선 차량들의 버넷트 위로 배설믈이 떨어진다. 파도가 쉼 없이 몰려온다. 저 파도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파도는 절대로 중간에 소멸되는 일은 없단다. 한번 만들어진 파도는 그것이 심해(深海)의 것이든, 근해近海)의 것이든 관계없이 한 방향으로 끝까지 밀려온다는 것이다. 나는 파도를 바라보며 순간 소름이 끼치는 오싹함을 느꼈다. 파도가 나를 일깨운다. 그렇다. 만사(萬事) 심은 대로 거두는 법.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그 씨앗은 언젠가 반드시 싹이 난다. 싹은 푸른 잎을 내고 자란다. 가지가 번지고 무성하여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이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인간사의 이치를 모르는 자는 얼마나 많은지…나는 나의 주변에서 인생의 태반을 송두리째 놓쳐버리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는 ‘-걸,’‘-걸’하며 죽는단다. 진실하게 살 걸, 베풀며 살 걸 등등.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인생은 한번밖에 없다. 시행착오((施行錯誤)를 되풀이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짧다.

 
 세상사 일반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소위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정말 한심한 자들이 너무나 많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삶의 모델로 삼아왔다. 나의 아버지는 참으로 정직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당신을 흠모하면서 당신의 모습을 닮아가려 할 뿐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삶의 좌우명은 성경의 이 한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에 목숨을 걸면서 매사에 최선을 다해왔다. 얼마 전에 어느 모임에서 나를 곁에서 오랜 동안 보아왔던 한 지인(知人)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은 내가 만난 무수한 사람들 중에 정말 정통적으로 산 사람 같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그 순간 빙긋이 웃으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나의 나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를 언제나 지켜 주시고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찌 지금의 내가 있었겠는가. 언제나 자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믿어 주신 아버지, 자식을 위하여 기도로 한 평생을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그리고 기도와 이해로 나를 감싸 준 나의 아내, 아빠를 존경하며 따라 준 나의 자랑스런 딸 선미, 경미, 아들 희원이.“나의 아들과 딸들아, 고맙다. 그리고 여보, 당신에게는 따따블로 고마워.”

 
 크리스챤들이여, 하나님께 무엇이든 구하면 다 들어준다고 생각하지 말라. 성경 야고보서 1장 13∼17절의 말씀을 읽어 보고 깊이 묵상해 보라. 거기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사람이 시혐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迷惑)됨이니” 라고 하셨다. 정말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성경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하였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 볼 일은 나의 의(義) 곧 욕심(慾心)을 위해서 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義)를 위해서 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동기를 보신다. 동기가 불순하면 결코 들어 주시지 않는다. 성경에 너희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情慾)으로 구함이니라 한 말을 잊었는가? 일 터지고 울고불고하지 말고 대형사고 터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그러기에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다.


2. 하나님의 마음을 알자

 
  나는 나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의 자녀들과 지상(紙上)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規例)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3)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이 말씀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거나 읽으면서 그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낸다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된다. 아무리 얽히고설킨 인생의 난제(難題)도 한방에 해결된다.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구약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가 살았다는 기록을 우리는 호세아서를 통하여 알게 된다. 그는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남유다 왕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와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가 통치하던 기간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 시대에 북이스라엘은 영적∙사회적으로 가장 타락하였다. 즉,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망각한 채 율법을 무시하고 음란하게 우상을 섬겼으며 이웃에게 불의를 자행하는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알려하는 자를 두루 찾고 있었다는 것을 호세아서 2장 2절에서 알게 된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니라 하는 말씀 중의 ‘비로소’에서 그 패역(悖逆)한 시대에 당신의 마음을 아는 자가 호세아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기막힌 명령을 내리신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명령이다. 단 한번밖에 없는 인생에서 누가 이 명령을 따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고 음란한 여인과 같이 타락하여 참신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당신의 자녀 이스라엘 민족을 그래도 결코 버릴 수 없는 당신 자신의 마음을 호세아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호세아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하나님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여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았고 6장 1∼3절에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호소할 수 있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3.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라

 
 선(善)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였다. 부지런히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특히 젊을 때에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 심지 않고 거두는 것은 잡초뿐이다. 

 
 그러면 선(善)은 고사하고 이미 많은 악(惡)의 씨를 뿌린 자는 어떻게 하여야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바로 다윗 왕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나의 마음에 합한 자라 하셨다. 그러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는 간음죄를 짓고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서 죽게 하는 살인죄의 씨를 심을 때는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죄의 열매는 너무나 쓰리고 괴로웠다. 시편32편 3∼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처절하게 절규(絶叫)한다. 내가 토설(吐說)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상하고 진액(津液)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다고 부르짖는다. 백주(白晝)에 아들이 어머니를 범하는 근친상간의 치욕(恥辱)이 자행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는 사건과 형제간의 살육 사건이 모두 다윗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징계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다윗의 절규는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가장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윗의 범죄를 통하여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우리를 교훈하시면서 또한 다윗같이 하나님의 긍휼함을 구할 것을 명령하신다.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히 죄를 회개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했다. 그리하여 용서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이게 다윗의 기도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윗같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내 모습 이대로 오면 된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기 자녀를 결코 내치지 않으신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좋으신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께 돌아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받아 주소서. 할렐루야, 아멘.”  (2008. 11,01)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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