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베이징 올림픽이 소문만큼이나 요란하게 개막되더니 폐막식도 유난히 요란하게 막을 내렸다.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이지만 이번 올림픽은 한국인들에게는 남달리 기억되는 그런 것이었다. 왜냐하면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많은 금메달(13개)로 세계 7위에 우뚝 섰으며 스포츠 강국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는 경험도 가졌고 경제적으로는 GDP 대비 세계 11위까지 진입한 적도 있지만 서구 열강이나 북미지역 몇몇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 우리로 하여금 묵은 체증을 시원히 뚫어주는, 아니 우리로 하여금 확실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해 주는 일이 바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박으로 터져 나왔다. 그게 바로 야구경기다. 야구하면 미국이요 야구는 선진국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세계 최강 미국의 상징이 야구이기에 우리가 미국을 이긴 것이 더욱 값지다. 그러기에 일본은 야구에 목숨을 거는 나라다. 2차 대전에 패전국인 일본은 미국에 대하여는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은 대개 영어에 약하다. 일본을 여행하는 관광객에게 가이드가 귀띔해주는 말을 새겨들으면 크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일본에서는 영어를 쓰라. 그러면 존경을 받는다.’는 말이다. 일본인은 한국에 대하여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36년 간 저네들이 우리를 지배했다는 우월의식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일본에서 일어를 쓰면 더욱 멸시를 받는다. 나는 몇 년 전에 일본의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이것을 실감 있게 체험했다. 나의 유창한(?) 영어실력이 돋보였다. 나의 거침없는 영어실력에 일본인이 주눅들어하는 모습을 내 옆의 아내가 확인하며 나를 존경스런 모습으로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때보다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아주 극적인 경기가 있었다면 단연 일본과의 준결승과 쿠바와의 결승전인 야구경기였다. 우리는 9전 전승으로 결승전에 올라왔다. 제1회 WBC(world baseball classic)경기에서 우리는 일본에게 쓴 패배를 맛보았다. 이때 일본의 야구영웅 이치로는 앞으로 30년 동안 한국이 일본을 넘볼 수 없게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런데 1년 후 우리는 올림픽의 예선과 준결승에서 일본을 호쾌히 이겨 버렸다. 그것도 모두 역전 드라마로 말이다, 결승에서의 우리의 상대는 역대 올림픽 최강팀 쿠바였다. 정작 극적 드라마는 9회 말에서 일어났다. 간략히 경기개요를 말하면 이렇다. 한국과 쿠바가 3:2의 스코어로 쿠바의 마지막 공격을 맞은 1死 후 만루의 9회 말 상황이었다. 우리에게는 작전의 여지가 없었다. 유일한 작전이 있다면 유격수나 2루수 쪽으로 굴러가는 병살타를 유도하여 3:2의 스코어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에게서 이것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 상황에서 상대방 감독이 병살 타자를 내놓겠는가. 상대방의 작전은 무궁무진이다. 홈런은 아니라도 큰 것 한방이면 상대방에게 역전의 승리로 돌아간다. 외야 플라이나 스퀴즈 번트 하나면 최소한 동점이다. 그러면 연장전이다. 그런데 기막힌 사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상대타자가 병살타를 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상대타자가 병살타를 친 것은 확률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들 두고 복이나 운으로 돌린다. 세상에서는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흔히 운이나 우연으로 돌려버린다. 그러나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다. 우리민족이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은 것이다. 이 은혜가 누구에게 찾아오는가?


 구약 성경 에스라書(1:1∼4)에서 나는 이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패망과 회복을 통하여 세계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모든 주재권(主宰權)은 하나님 당신에게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일찍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당신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의 적국에 패망할 것과 포로생활 할 것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줄기차게 경고하여 왔다. 그러나 목이 곧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거부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추종하고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핍박하여 그를 땅 속에 묻기까지 하였다. 하나님께 배역한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망하고 말았다.(렘52:12∼16)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길고 긴 포로생활의 질고(疾苦) 속에서 소망 없는 나날을 살아가고 있었다. 적대국 바벨론에서의 70 년의 노예생활은 계속되어 갔지만 그 어디에도 해방의 소식은 없었다. 치욕(恥辱)과 모멸(侮蔑)의 나날은 더욱 목을 옥조여오고 한탄과 절망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어갔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어 당신의 주관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굴러가서 예정된 시간에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시었다. 마침내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패망하게 된 것이다. 제국 페르시아를 세운 고레스왕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민족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불을 숭상하는 조로아스트교의 신봉자다. 그가 하나님을 알 리가 없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선포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로만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가 될 것이며 포로생활 70년 만에 해방되어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렘29:10)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레스를 감동시킨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말씀을 좇아간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보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기억하신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그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흔히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기도 하고 복음의 통로라 부르기도 한다. 그 이유를 성경에서 잠시 찾아보자. 창세기 12장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라는 기록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좇아간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의 친척 아비의 집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명(命)하셨을 때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말씀을 좇아갔다고 히브리書 기자는 그를 평하였다. 그는 또한 예배를 최우선 순위에 둔 사람이다. 창세기 12장 7∼8절에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라는 기록이 있다.


 나도 기적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은혜란 곧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입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은혜를 주시는가? 겸손과 온유함으로 하나님께 불쌍히 여기심을 간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나는 나의 자녀들이 복음의 통로가 되기를 항상 기도하고 있다. 그러기에 말씀을 좇아가고 예배에 목숨 걸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당신의 은혜를 받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열방을 향하여 전능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나누고 베푸는 풍요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기적을 맛보면서 감사와 환희의 삶을 살기를.                         

Posted by 힛데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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