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와 찬양

소리의 합창

힛데겔 2008. 12. 15. 10:58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돌각담을 끼고 흐르는 계류(溪流)를 따라 우리 일행은 돌작밭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산의 정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능선길을 택하여 오르고 계곡길로 하산하기고 하였다. 아무래도 늦가을의 왕자는 억새풀이다. 푸른 대숲을 끼고 돌아 한참을 능선길을 따라 오르니 절의 서북쪽으로 더 넓은 억새풀밭이 펼쳐진다. 이십여 년 전, 을숙도 갈대밭에서 받은 감흥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을숙도 갈대밭의 주인이 철새떼라면 이곳 억새밭의 주인은 바람이다. 우리의 머리 위로 이따금 스쳐가는 이름 모를 산새의 울음소리만이 바람결에 묻혀버릴 뿐이다. 사각사각 발밑에서 부서지는 억새풀의 숨소리를 들으며 발길 사이로 난 외길을 헤집고 일렬 종대로 오르는 우리의 모습이 퍽이나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사람 키의 몇 길이나 자란 억새풀 속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내 키는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산의 팔부 능선쯤 올랐을까? 한 마리의 까마귀가 우리의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겨울을 재촉하는 울음을 울고 간다. ‘까악, 까악…’ 계곡을 건너 반대편 능선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발바닥에 와 닿는 낙엽의 따스한 체온, 높푸른 가을하늘의 해맑음, 계곡을 훑어 불어오는 바람 이 모두는 우리를 풍요하게 한다.

 
 하나님과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면서 배우고 가르치며 울고 웃고 부대끼기 어언 삼십여 년, 육십이면 이순(耳順)이라 했다는데 나도 이제 최소한의 철이 든 것인가? 공자는 논어의 허두(虛頭)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했다는데 내게는 사랑할 가족과 이웃이 있고 가르칠 제자가 있고 밤을 새워 기도할 시간이 있으며 내가 경외할 하나님이 계시니 나의 이 행복을 어찌 공자에 비기겠는가!

 
 황소등같이 민듯한 능선을 타고 오르는 우리 일행의 숨결이 자꾸 가빠진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앞산의 두 능선이 마주보며 다정하게 아래로 달음박질하다 곤두박질한 지점에는 아직 푸르름이 남아있고 계곡 아래로는 물줄기가 몇 차례 낙차를 이루어 폭포를 만들고 면면히 흘러 소(沼)를 이루고 있다.

 
 나는 산을 오르며 힘찬 산의 숨소리를 듣는다. 산은 인간의 나타(懶惰)와 안일(安逸)을 거부한다. 산은 다만 겸허와 절제로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앙상한 가지의 나목(裸木)들로 을씨년스럽기까지한 산은 겨울이 되면 백설의 은세계로 다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산을 찾을 것이다. 어느 선승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다더니 산은 언제나 거기 그곳에 우뚝 서 있다. 다만 인간만이 변할 뿐이다. 그들도 가고 너도 가고 언젠가는 나도 가는 것이다.

 
 또 한 바탕 바람이 일어난다. 뭇 소리의 합창이 시작된다. 나뭇잎 갈리는 소리와 저 지구의 중심에서 울려오는 산울림 소리가 엄숙한 하모니를 이루며 계곡 속에서 숨죽이던 멧새들을 일제히 푸른 하늘로 날려올린다. 새들의 비상(飛翔)이 시작된다. 태양을 향하여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가는 새떼들의 군무(群舞)! 고요하던 산들이 일제히 용틀임을 한다. 이 소리의 합창 속에서 나는 갑자기 창조의 섭리를 깨닫는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산의 질타(叱咤)소리에 우리도 가세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