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커밍데이
꽃비 오는 가로수 길을 걸어 본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늦가을이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온통 오색으로 채색한 듯 요란스런 단풍 길을 혼자 걸어 본다. 사십여 년 살아오던 정다운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이 도시는 언제나 나에게는 낯이 설다.
며칠 전 나는 제자에게서 다정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삼십 년 전의 제자이다. 고교 졸업 삼십 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데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정말 반가운 전화다. 그들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제자들이다. 내가 브니엘에 몸담은 것이 1974년 시월 말이다. 그때 나는 시간 강사로 잠깐 그곳에 머물렀다. 나는 그곳을 내 삶의 징금다리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곳이 내 삶의 고갱이인 이곳으로 바뀌게 되어 버렸다. 나의 이곳은 나에게는 내 생애 노른자위였다. 이곳 브니엘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교사로서, 신실한 한 기독교인으로서 제자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내가 브니엘에 부임하여 강단에 처음 선 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2학년 어느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윤동주의 ‘서시’를 강의하고 난 후 학생들에게 짤막한 과제를 부여하고 나는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교실 뒤켠에 가서 앞을 보니까 교실 정면 칠판 위 한 가운데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조금 낮은 위치에 칠판 양옆으로 교훈과 급훈이 걸려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이상하게 교훈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나는 조금 자세히 볼 양으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가 그 교훈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동공이 커지면서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그 교훈이 나를 이 브니엘에 붙박아 놓아 버렸다. 그 후 33년 동안.
교훈
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려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뛰노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민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좋은 교훈이 없노라고. 나는 이 교훈을 제자들에게 체질화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했다. 어떤 때는 제자와 밤을 새며 무릎을 맞대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매질도 많이 하였다. 어찌 나뿐이랴. 나의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이 이렇게 제자들을 사랑했다. 그러기에 우리 브니엘은 대학 진학에 있어서 전국 최상위 10위권 안을 유지하는 확실한 명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남다른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 확신한다.
나는 지금도 조용히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정말 브니엘은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는 학교라는 것을 말이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브니엘을 졸업한 제자들은 이 교훈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긴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에 있건 간에 '반드시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브니엘맨들은 언제나 자기의 정체성(正體性)을 잊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자기 몫을 감당한다.
오늘 그 현장을 나는 서울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제자들 칠팔 명과 조촐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삼십 년 전의 그때의 그 얼굴들을 대면하니, “사제(師弟) 간의 정담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3학년 9반은 학급 정원이 65명이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콩나물 시루였다. 복교실(복도를 사이에 두고 두 교실이 마주보고 있는 시스템)에 수많은 학생들로 붐비는 우리 학교는 교실 환경이 최악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는 자갈치 시장보다 더 요란했다. 그런데도 우리 졸업생들은 모교를 왜 잊지 못하는가? 바로 학생 저들 사이의 참으로 끈끈한 우정과 선생님들의 남다른 사랑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진다. 오늘 졸업 30주년을 맞아 나이 오십이 되는 이들은 참으로 자랑스런 나의 제자들이며 시대정신을 갖고 새벽을 일깨우는 이 땅의 진정한 동량지재(棟梁之材)들이다.
고등학교 시절은 꿈이 가장 활발하게 내면적 동기를 충동질할 때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보금자리를 준비할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에 만난 진정한 한 친구는 나의 삶에 고향과도 같다. 고향은 언제나 나에게 푸근함을 주듯이 친구는 그런 존재다. “얘들아, 친구란 말의 정다움을 너희들은 아는가?”
며칠 뒤면 스승과 친구들을 만나러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싣겠지. 너희들은 콧노래를 불러라. 해운대, 송정 백사장에서 봄 소풍 때 담임선생님을 들어 차가운 봄 바다에 헹가래치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 그날 밤 해운대 티파니21 유람선 위에서 만나자. 사랑한다, 제자들아.
나의 좋으신 하나님이 너희들을 축복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