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봄의 천국

힛데겔 2011. 3. 3. 19:49
 

 봄이 찾아오는 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온다. 땅 밑에서 새싹이 꼬물꼬물 용틀임을 한다. 조금 있으면 딱딱한 땅껍질을 헤집고 연한 새순을 쏘옥 바깥세상으로 내밀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나, 안 죽었걸랑.‘ 맞아. 우리는 모두 안 죽었지. 잠시 매서운 겨울 추위에 조금 움츠린 것뿐어거든. 얼음장 밑에서 조용히 숨죽이며 기다리던 미나리가 새파란 새순을 물 위로 밀어올리며 봄을 부르고 온 산과 들이 봄을 맞을 준비에 바쁘니 계곡의 잔설(殘雪)도 슬그머니 뒷걸음쳐 물러난다.


 요즘 세상 정말 번거롭다. 처처에 재난과 전쟁이 쉴 새 없다. 일본의 화산 폭발과 대 지진, 호주의 대 홍수, 뉴질랜드의 지진에 이어 세계 곳곳에서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가 도미노가 되어 종교와 이념으로 민중을 교묘히 묶어두었던 리비아 카다피 42년 독재가 무너져 내리고 이웃 중동의 여러 나라로 번질 태세다. 중국도 걱정이고 북한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겠는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런 혼란한 세상일수록 정도(正道)를 따라가야 한다. 


 문화 상대주의라는 미명(美名) 아래 우리는 진리의 절대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만드신 일부일처제를 버리고 지구촌 곳곳은 일처다부제나 일부다처제를 정당화한다. 인간의 욕정에 끝이 있는가? 돈이 있으면 다음에 갖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 인간의 잔인한 이기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가? 이제 우리는 겸허히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야 가정을 지킬 수 있고 사회도 지킬 수 있다. 나는 나를 지켜주는 성경 구절 하나를 생명처럼 간직하고 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制御)하라(벧전2:11)” 이 얼마나 귀중한 말씀인가. 이 구절 속에는 참으로 중요한 진리가 숨어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고 우리는 잠시 이곳에서 머무르다 저곳 본향으로 가야하는 존재이며 육체의 정욕을 가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니 성령의 도움으로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나로 말미암아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내 아내, 자녀부터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라 할 수 있다.       


 요즈음은 가정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마약의 안전지대라 하는 우리나라도 가정주부가 마약에 중독되는 사례를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현대인이 왜 마약에 쉽게 유혹을 받는가? 향락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쾌락주의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적의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우리와 달랐다. 옛적에는 지덕(知德)을 겸비한 사람을 ‘선비’라 불렀다. 아무리 지식이 높아도 덕을 지니지 못하면 존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돈이면 최고다. 돈이 지순지고(至純至高)의 가치다. 그러기에 지식과 덕이 따로 논다. 우리 사회에 그럴듯한 지식을 갖춘 소위 전문 지식인이 행동을 개차반 같이 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이들은 한마디로 양심이 화인(火印) 받은 자이다.


 요즈음은 이혼도 아주 쉽게 한다. 그러기에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은 아예 없어져 버렸다. 결혼식장에 가 보면 주례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볼 수 없다. 그러면 왜 이혼을 하는가? 대부분은 성격차를 이혼 사유로 든다. 그러나 엄격히 따져보면 이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부부는 본래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는 법이다. 성장 환경이 서로 다르기에 성격과 취미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게 마련이다. 맞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성격 차는 필연적인 것이다. 어떤 부부는 싸우자고 만난 듯이 집요하게 싸운다. 더 싸울 일이 남았는가? 이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라. 이것이 최선이다. 다 큰 사람 내 것으로 만들려 하지 말라. 내 것으로 만들려 하는 그 자체가 문제다. 극도의 이기심을 버리고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보아주는 너그러움을 가질 때다. 너그러움은 관용(寬容)이다. 관용은 배려와 존경으로 통한다. 최고의 사랑은 배려와 존경이다. 나는 오늘도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 앞에서 아내를 사랑한다. 


 ‘얄궂은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우리나라의 흘러간 가요의 가사 한 구절이다. 참으로 명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는가?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11)” 그러기에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9:9).” 성경 말씀대로 해 아래서 헛된 날에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분복인 부부간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나에게 돈이 조금 없어도 좋다. 돈은 없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왜냐하면 돈으로 영원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명예나 지위가 없어도 좋다. 없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현재 나에게 있는 것을 세어보라. 눈으로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볼 수 있는가? 귀로 내게 속삭이는 아름다운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함께 하고픈 가족이 내 곁에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사 모든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지금 수도권 전철을 타 보라. 그리고 인천으로, 안산으로 훌쩍 떠나보라. 거기에는 바다가 있다. 짓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건너 먼 나라를 꿈꾸어 보라. 꿈꾸는 자는 행복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아내를 데리고 다시 한 번 가보라. 나는 당신이 있으므로 행복했노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 봄날은 내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봄의 천국을 준비하신다. 이곳저곳이 봄의 천지다. 산에도 들에도 강에도 바다에도 봄의 환희로 넘쳐난다. 이번 주말에는 경춘선 열차를 한번 타 볼까?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류열풍의 젊음 속으로 들어가 볼까? 며칠 전 주일 저녁에 거실에서 내가 KBS의 7080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딸애가 불쑥 제안을 한다. “아빠, 내가 방청권 신청해 볼까, 가 볼래?” 한다. 나는 한쪽켠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아내의 옆얼굴을 살짝 훔쳐보면서 ‘좋은 사람, 나 만나서 참 고생 많이 했어. 나, 당신에게 잘 해 줄게’ 속으로 조용히 되뇌면서 참으로 함께함의 행복을 느꼈다. 있을 때 잘해!